미드나잇, 그리고 오늘의 향기
  • 경북도민일보
미드나잇, 그리고 오늘의 향기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9.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드니 베쳇의 ‘Petite Fleur’

-향기

군대에서 막 제대한 직후 부산국제영화제와 시네마테크를 통해 시민을 위한 몇몇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과정은 영화의 이론과 비평에 대한 강좌를 수료하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민평론단에서 활동할 기회가 주어지는 프로그램이었다. 하루에 4편 정도의 영화를 보고 리뷰를 남기는 것이 습관이 된 터라 학점관리보다는 영화보기에 심취하던 때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호칭(씨네필)도 받았고, ‘시민’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평론가라 불리기도 했다. 잡지와 신문에 비평을 기고하며 영화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던 시기였다. 4학년 여름 방학, 대부분의 동기들은 취업스터디나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무모하게도 여름영화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신청하게 되었다. 비슷한 마음으로 영화학교에 참여한 학생들과 교감하고 공부하고 영화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향기>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이라는 수사를 붙이기에 민망한 것이 <향기>는 부산시네마테크를 통해 단 한번 상영된 것을 제외하고는 0과 1의 모습으로 남아 하드디스크 어딘가를 떠돌고 있거나 어쩌면 오래 전에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1회 상영으로 막을 내린 단편 영화를 소환하는 까닭은 시드니 베쳇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에 대한, 어쩌면 영화를 만들던 시기를 향한 그리움에 비롯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멍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 호텔의 벨보이가 장기투숙객인 손님을 흠모하고 있다. 손님은 느닷없이 깨끗한 수건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벨보이는 기쁜 마음으로 온몸을 정돈하고 수건을 서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벨보이는 냄새에 민감하여 자신의 몸은 물론 수건에도 인위적인 냄새를 덧씌운다. 치약과 로션과 헤어무스와 향수가 그것이다. 향기로 한껏 꾸민 벨보이는 자신만만해져선 손님이 묵고 있는 문 앞에 서는데 그때마침 복도에서 만난 옆방의 투숙객이 벨보이의 수건을 가로채고야 만다. 상심한 벨보이는 굳은 표정으로 돌아선다.

어떻게 이런 허접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대책 없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벨보이는 다름 아닌 내가 연기했고, 시나리오는 물론 연출과 편집 역시 내가 해버렸다. ost까지 직접 만들었으면 좋았을 뻔 했지만 어리석게도 저작권의 이해와 개념이 없던 나는 기성음악을 도용했다. 막무가내로 아무 곡이나 삽입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고른 곡은 시드니 베쳇의 ‘Petite Fleur’(작은 꽃)이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텅 빈 복도를 처량하게 걸어가는 벨보이의 모습으로 그려져야만 했다. 헌 수건을 수거하던 벨보이는 약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수건의 냄새를 맡는다. 영화는 흑백으로 변하고, 화면이 돌연 어두워짐과 동시에 강렬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온다. 오, 이런.

다시 떠올려 봐도 이런 명곡을 나의 영화에 가져다 뒀다는 것이 민망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종류의 감정은 평생 잊을 수 없기도 하다. 어느 날 들려온 소프라노 색소폰에 눈앞은 영화 속의 허름한 호텔 복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두터운 비브라토는 내 심장을 뒤흔들어 대고 격정적이면서도 다정한 음색은 좀처럼 허망하게도 날 보듬어주지 않고 스쳐만 간다. 내 몸 어딘가에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소리가 드나들고 있다. 시리고도 아프지만 나는 그 구멍을 메우거나 가릴 수가 없다. 지나온 구멍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구멍이다. 하지만 내 것이고 앞으로도 내 것일, 좁고도 큰 나만의 구멍이다.



-미드나잇, 그리고

‘미드나잇 인 파리’(우디 앨런, 2011)의 오프닝은 시드니 베쳇의 ‘Si Tu Vois Ma M?re’(혹시 내 어머니를 만나거든)이 흘러나오며 다양한 얼굴을 가진 파리의 풍경을 보여준다. 재즈의 태생지인 뉴올리언스에서 파리로 생의 보금자리를 옮겨간 이 색소포니스트의 인생은 영화와 조금 닮아 있기도 하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인 주인공 길은 파리의 한 가운데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 덕에 동경했던 파리의 예술가들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비슷한 마음을 품고 파리의 골목을, 카페를, 묘지를 정처 없이 걷던 날들이 있었다. 생 엔티엔 뒤 몽 성당 앞에서 자정의 종소리를 기다리며 과거의 한 풍경으로 빨려 들어가길 기대했던 것이다.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나는 어떤 순간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날 선택한 그 장면 속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엔딩 음악이 끝나면 영화도 끝이 나지만 비로소 극장의 불빛은 환하게 켜져 우리를 강변으로 이끈다. 나는 내가 어디쯤 와 있는 것인지 도무지 감조차 잡지 못하면서 여전히 내가 지나친 어떤 한 풍경을 그리워하는 중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