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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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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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말과 글을 통해 배우고 쌓여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제 몸으로 느끼면서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경향으로 우리 교육이 바뀌어 가고 있다. 다행이다. 중학교 1학년의 자유 학년제가 바로 그 예인 것이다. 이런 교육의 변화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이 외우고 익혀서 시험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되어 있다. 이런 교육은 현장감 있는 살아 숨 쉬는 지식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영어 교육을 보자.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영어를 배우고 익혀도 문장 하나 제대로 못쓰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 영어였다. 읽고 해석하는 영어 교육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어느 외국에서 우리 교민을 만났다. 그 분의 얘기다. 외국에 올 때는 영어를 할 줄 몰랐는데 일 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었고 들을 수도 있게 되었다고 했다. 1년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10년을 교육과정 속에 넣어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도 말할 수 없고 들을 줄 모르는 죽은 영어였다. 어학의 기본이 무엇인가? 듣고 말하기다. 그런 교육을 하지 않고 입시 위주의 교육에 몰두한 결과였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영어에서 나타나기 시작해서 많은 돈을 주고 어린 자녀들을 해외에 어학연수를 보내게 된다. 지금은 좀 나은 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학생들이 해외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어느 대기업 인사팀 간부의 얘기다. 입사 원서의 자기 소개서에 해외 연수를 가지 않은 지원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책을 통한 암기 중심의 획일화 교육이 영어 뿐이겠는가?

미국에 학위 취득을 위해 3년을 공부하고 귀국한 어느 장학사의 얘기다. “미국에서 공부해보니 우리와 무슨 차이가 있던가?”라고 물었다. 과제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제에 대한 조사와 정리는 미국 학생들 보다 우리 학생들이 월등했다. 과제는 과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표를 해야 했다. 미국 학생들은 과제물 작성보다 발표에서 우리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여기에 우리 교육의 맹점이 나타난다. 질문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몸에 밴 교육과 정답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정답 찾기에만 익숙한 교육의 차이다. 누군가가 풀어 놓은 답을 베끼고 익히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머릿속에 든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폭이 넓고 유연하고 아는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IMF로 어려워하던 때 박세리 선수와 박찬호 선수가 외국에서 보여주었던 승전보에 우리 국민이 그나마 위안을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있을 때 동료 선수가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계속 하기에 처음에는 자기를 놀린다는 생각에 화를 내기도 했는데, 자기한테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묻고 또 묻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들은 자라면서 저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생활해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질문과 호기심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이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오늘의 인류를 이렇게 변화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조용하고 말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질문을 하고 싶어도 모두가 조용한데 자기 혼자만 나대면 외톨이가 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창의성이 생기고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나오겠는가? 10년 배워도 말 못하는 영어와 같이 초·중·고·대학에서 16년을 배워도 조리 있게 말하고 발표하고 설명 하나 제대로 못하는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대학 강의실에서도 질문 하나 없는 침묵 속에서 그냥 듣고 받아 적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실태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우리 교육을 반성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져서 완전히 틀을 잡아야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방한해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입시위주 교육을 지적하며, 이것은 한국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의 생각만 외우고 익히는 데 습관이 된 우리 학생들이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 후 탈락률이 44%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일이 있었다. 아이비리그대학에서는 과제를 던져주고 네 생각이 뭐냐고 묻는다. 우리는 그런 교육에 익숙하지 못했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많은 한국 학생들이 미국의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질문과 발표와 토론에 적응할 수 없어서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이렇게 많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가 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듯이, 많은 학력과 스펙이 입시와 시험 성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창의력이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은 화려한 공작새의 날개를 만들 것이 아니고, 솔개처럼 공중을 유유히 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지식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의 핵심인 실력도 살아 숨 쉬는 생동감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이영우 전 경북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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