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 그녀를 벼랑 끝 내몬 악플… 그 뒤엔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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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 그녀를 벼랑 끝 내몬 악플… 그 뒤엔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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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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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라·女연예인 성상품화 문제’ 등 소신에 외모 평가·조롱으로 공격
엔터테이먼트 산업도 책임… 사태 반복 방지 위해 사과·보완책 마련
여성 연예인을 ‘해어화’(解語花·말을 알아듣는 꽃)로 여기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연예인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지난 14일 안타까운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것 때문이다.

설리가 평소 ‘악플’(악성댓글)이나 여성 연예인 성상품화 문제 등에 가지고 있던 입체적인 소신은 일차원적 외모 평가나 조롱을 담은 악플에 묻혀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고인(故人)이 된 설리는 자신에게 달린 악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송에 출연하는 등 쏟아지는 비난에 맞서고자 했지만, 악플에 시달려 그룹 f(x) 활동을 중단하는 등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부터 꾸준히 악플과 함께 해온 설리는 건강상의 이유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겠다는 ‘노브라’ 소신 등을 밝히면서부터 더욱 독한 악플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이 악플들에는 여성 연예인을 향한 혐오가 녹아 있었다.



◇ 악플에 ‘여성혐오’ 광범위… “소신을 ‘관종’으로 폄훼”

설리는 데뷔 이후 시기별로 계속해서 외모와 행실을 평가하는 댓글의 대상이 됐다.

그룹 활동 시절에는 키가 크고 젖살이 있다며 ‘자이언트 베이비’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일상을 담은 사진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문란해 보인다’거나 ‘눈이 풀려서 마약을 한 것 같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을 만난다는 이유로 성희롱성 댓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에는 ‘노브라’에 대한 소신이 공격 대상이 됐다.

이 같은 반응들은 연예인을 향한 일상적인 악플이었다기보다는 설리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달린 ‘여성혐오성’ 악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자 아이돌은 아름답고 젊으며, 착하고 상냥한 모습을 요구하는 정형화된 남성의 욕망에 부합하는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며 “여기에 거스르는 모습을 보인 것이 공격의 대상이 된 하나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칼럼니스트 도우리씨도 설리가 생전에 밝힌 ‘노브라’나 낙태죄에 관한 소신을 언급하면서 “무해하고 안전하고 아름답다는, 일반적인 여성 연예인 이미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대중의 압력과 무분별한 비난에 시달렸다”고 봤다.

도씨는 설리가 평소 자신의 소신을 SNS 등을 통해 드러낸 것이 ‘관종’(관심종자)이라는 평가를 들은 것도 혐오의 일환이라고 짚었다. 그는 “설리는 자신의 의견을 낸 것”이라며 “그것을 그저 ‘관종’으로 일축하는 시각 역시 여성을 주관을 가진 개인으로 대하지 않고 성별로 환원해서 대하는 행위이므로 혐오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연예인 고(故) 설리 (인스타그램) 뉴스1


◇“연예인은 상품이니 외모평가 감내?…차별적 시선 재생산”

여성 연예인을 향해 댓글을 다는 행위는 여성 연예인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상품이므로 외모와 행실은 상품가치에 해당하고, 따라서 이를 평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논리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도씨는 “외모를 자원으로 하는 직업이니 이에 대한 평가가 오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연기력이나 음악적 능력으로도 평가를 받는 남성 연예인과 달리 유독 여성 연예인이 외모로만 평가받는 경향이 크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인권정책팀장은 “여성 연예인은 유독 고정적인 성역할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그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소신대로 행동했을 때 여성혐오성 악플이나 반발이 많았던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김 교수는 여성 연예인에 대한 평가를 정당화하는 것이 결국 이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악플은 소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자 그룹에도 책임이 있다”며 “악플을 견디는 것도 여성 연예인이 갖춰야 할 ‘프로정신’이라고 치부하면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이런 생산자 그룹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성적 소비를 감당하는 것이 직업정신이라고 규정한다”며 이러한 행태가 결국 소비자로 하여금 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유지하게 만든다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책임… 사과와 재발방지 필요”

전문가들은 안타까운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인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 대응을 요구했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소속사에서) 최소한의 인권 보장을 해주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설리가 소속사에 그 같은 요구를 했던 게 사실이라면 회사 차원에서 사과와 반성을 하고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획사 차원에서 막고 관리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만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봤을 수도 있다”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된 만큼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김 교수는 혐오 발언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혐오 발언을 규제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법안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여성 연예인을 특화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도 대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수 겸 탤런트 설리(25.본명 최진리)가 14일 오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소재 설리의 자택이 통제되고 있다. 뉴스1


◇“설리는 ‘활동가’였다…추모와 애도 줄잇는 이유”

설리가 삶을 마감한 것은 한 여성 연예인 개인의 불행한 개인사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비판에 행동으로 맞서던 활동가의 죽음이라고 해석하자는 자성적 애도의 목소리도 나왔다.

신 교수는 “설리는 어렸을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여성 연예인을 상품화하고 성적 대상화를 하는 데 반발을 느끼고 저항했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 차원에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인정을 얻고자 노력을 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많은 20~30대 여성들이 단순히 불행하게 살다 간 여성 연예인 개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추모와 애도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씨도 “악플로만 설리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그 죽음을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김 팀장은 “설리라는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혐오의 문제와 관련한 행보를 보였고, 여기에 많은 여성이 공감했고, 그래서 더 안타까움이 큰 것 같다”며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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