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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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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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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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의 ‘올림피아 라이브 콘서트’를 들으며
-10월11일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당신의 세계를 생경하게 바라봅니다. 매일 밤 그리고 아침, 도시를 산책하며 흘러나오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어요. 어느 풍경 하나 뺄 것 없이 살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강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강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제 곁을 스칩니다. 파리에서의 남은 사흘을 묘지 산책으로 결심한 데에는 아무래도 당신의 목소리가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건 제가 아는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전 당신이 누워 있는 자리를 찾아 한동안 걸었습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쉽지 않았어요. 잠깐 카페 의자에 앉아 바람을 즐기는데 무언가 빠져나가는-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담배를 피지는 않지만 분명 연기 같은 물질들이 몸속을 돌아다는 것 같았어요. 카페 옆으론 카페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갔던 흔적들이 보입니다. 코스터를 하나 가져오고 싶어 종업원에게 묻습니다. 제가 이걸 하나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종업원은 슬쩍 미소를 지었고 저는 허락으로 생각하고 주머니에 넣습니다. 이걸 당신의 자리에 두면 좋을까요. 코르크 마개가 좋을까요, 제가 탔던 지하철 표나, 초록 잎 같은 책갈피는 어떨까요. 장미가 좋겠지요. 오래된 와인처럼 붉은.

무엇이라도 향기 나는 것을 당신의 자리에 놓아두고 싶었습니다.

-파리에서 당신은

묘지의 길 저 끝에 작은 빛이 보였고, 그건 정말 참새처럼 작았지만 난 당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안았어요. 하지만 내 품엔 적막한 어둠 같은 검은 묘비가 있을 뿐이었지요. 거대한 당신이 아무 말 없이 누워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돌연 아파옵니다. ‘Le ciel bleu sur nous peut s‘effrondrer. Et la terre peut bien s’ecroule. Peu m‘importe si tu m’aimes. Je me fous du monde entier.’ 푸른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가 주저앉는다고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저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저는 아주 허전해집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당신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이다. 음악이라는 관념이 사람처럼 나타난다면 당신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들으며 웃고 울고 깊은 사유를 하게 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생각을 하게도 되어요. 처음부터 다시 들어도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음악이기도 하고 잊기 힘든 이름이기도 해요. 와인을 마시며 곁에서 조용히 들으면 되는 것인데,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보기 위해 여기 와 있습니다.

-장밋빛 인생

그런 날 있잖아요, 사람 없는 길보다 시장 안 상가나 술집 근처를 걷고 싶은 날. 작은 소음을 내며 살아가는 이러 저러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 틈에 조용히 편입되고 싶은 날, 테라스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은 날, 잠시 생각이라는 것을 멈추고 싶고 때론 생각을 거꾸로 되감기 해버리고 싶고 그러다 문득 잊고 지낸 어릴 적 친구의 고민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날이요.

그런 날에는 저는 당신을 듣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고, 당신과 대화하고, 당신을 껴안길 주저 하지 않습니다. 다른 언어로 살아 왔고, 살아갈 테지만 음악 안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의 멍울진 목소리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죠. 그 아름다운 표정, 말로 표현하기 힘든 당신만의 몸짓과 손짓은, 눈길은, 눈빛은.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당신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줄 정도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만큼 아픈 사람이었을 것이에요.

세상의 모든 사랑과 오후의 빛은 저물기 마련이고 곧 저녁이 올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여기에 서서 당신의 이름을 읽어보고 소리 내어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라는 노래를 불러보고 있어요. 오래된 친구처럼 당신의 풍경을 잠시 다녀갑니다. 에디트 피아프에게. 당신의 이름을 당신 곁에 두고 옵니다. 무엇이라도 향기 나는 것을 당신의 자리에 놓아두고 싶었습니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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