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선율에 가족의 사랑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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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선율에 가족의 사랑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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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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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바이올린 무반주 파르티타(Partita) 2번 중 마지막 곡 ‘샤콘느’(Chaconne)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가을 남자를 잘 표현한 ‘샤콘느’

요즘 집밖에 나와 산책이라도 하자면 길가의 가로수는 완연한 가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듯하다. 가로수 은행의 노란 잎은 어느새 길 모퉁이에 눈처럼 수북이 쌓여 온통 노란색이다. 예쁘게 무르익은 단풍을 즐기기 위해 주말에는 친구들과 약속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은 짧은 여행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가을하면 붉은 빛의 단풍과 각양각색의 낙엽은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힐링을 주는 것 같다. 가을하면 낙엽인데 낙엽의 주제로 잘 어울리는 클래식음악이 없을까?

오늘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바흐의 바이올린 무반주곡 ‘샤콘느’에 대해 이야기하려한다. 음악사에서는 바흐의 인생을 5부분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 번째 시대는 ‘아이제나흐’ 시대, 두 번째는 ‘아른쉬타트’, 세 번째는 ‘바이마르’, 네 번째가 ‘괴텐’, 다섯 번째가 바흐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라이프치히’에서의 삶이다. 오늘 소개할 바흐의 ‘샤콘느’는 바흐의 전성기시대인 ‘괴텐’시대 때 만들어진 명작 중 하나인 바이올린 무반주 독주곡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바흐

바흐 ‘괴텐’시대란 바흐가 독일의 한 지방인 ‘괴텐’의 궁정악장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이다.

‘괴텐’에서 완성된 그의 대표적인 기악곡으로 무반주 첼로소나타, 브란덴브루크 협주곡, 평균율 등이다. 만약 바흐에게 ‘괴텐’시대가 없었더라면 바흐는 그저 그런 종교 작품만 작곡한 종교인이었을 뿐 오늘날의 바흐는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괴텐’에서 그의 성공적인 작품 활동은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불릴 만큼 그의 인생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시절이었다.

바흐는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바바라 바흐’(Maria Barbara Bach)와 사별하고 재혼을 했는데 두 아내와의 사이에서 무려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20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 가장이었다. 궁정악장으로 교회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장례식이나 여러 장소에서 연주될 곡을 작곡하여 돈을 벌기도 하고 때로는 커피숍이나 파티장 연주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어떤 일이든 그의 지위와 품위 같은 것은 내버려둔 채 가족을 부양한다면 사람들이 주문하는 대로 연주는 연주, 작곡은 작곡대로 끝임 없이 일을 했던 슈퍼맨 같은 가장이었다.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작곡한 샤콘느

1720년 초여름의 이야기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괴텐’에서 3개월 동안 장기간 머물며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청청벽력 같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은 바로 바흐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 바바라 바흐’(Maria Barbara Bach)가 그가 도작하기 일주일 전에 사망하였으며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땅에 묻혀 장례까지 끝났다는 것이다. 일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아내가 나와는 무관하게 장례가 치러지고 이미 땅 속에 묻혔다는 기막힌 현실을 직면한 바흐, 이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임종도 함께 못하고 장례도 제대로 치러주지 못한 바흐의 심정은 정말 비참했을 것이다. 아마 바흐는 죽은 아내에게 평생 죄인이었고 당시 죽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바흐는 이 같은 기막힌 자신의 인생을 극복하고 죽은 아내를 위해 바흐가 늦었지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아내를 위한 추모곡 즉 사부곡(思婦曲)을 만드는 것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명곡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마지막 곡 ‘샤콘느’(Chaconne)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샤콘느’는 톰보(Tombeau) 즉 일종의 추모곡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앞서 말한 듯 평생 함께하지 못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샤콘느’를 작곡했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지극히 종교적이다. 내용인즉,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어도 결국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한다’는 내용으로 아내의 추모곡은 종교적인 내용을 인용했다. 성경의 내용처럼 사랑하는 바흐의 아내도 언젠가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남편인 바흐와 꼭 재회 할 수 있다는 간절한 기원의 의미인 것이다. 바흐는 생전에 아내에게 못 다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이 추모곡으로 표현되어있다. 그의 애절한 추모의 이야기는 사랑고백이자 사부곡이며 신앙고백이자 못 다한 그의 사랑이었다.

‘샤콘느’를 감상해보면 처음 들리는 8마디 주제는 고난에 의한 신의 죽음을 암시한다. 첫소리의 화성만 들어도 비통함 그자체이다. 작품초반에는 내내 슬픔이 연주되고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없을 정도로 음악은 연주된다. 작품 중반에는 바이올린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묘사하는 멜로디가 들릴 것이다. 이것은 천국에 도달했다는 의미고 3옥타브를 넘나드는 아르페지오는 다가올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부분은 바흐 자신의 영혼과 하느님을 찬양하며 간청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처음 주제로 돌아오는 마지막 부분에서 바흐는 다시 부활절 찬송가로서 돌아와 아내‘마리아 바바라 바흐’의 죽음을 애도하고 부활을 기다리며 추모곡으로 끝맺는다.

-가장의 심정이 잘 표현된 ‘샤콘느’

예전에 필자의 조카가 클래식 음악 감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에서 조사해오라는 숙제가 있다고 도움을 구한 적이 있다. 음악 감상법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그때 필자는 바흐의 ‘샤콘느’의 음악을 들려주며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을 상상하며 감상해보라고 권했다. 태어나 자라고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기쁜 일과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며 음악을 감상해보라고 했다. 연이어 현실에 있어 절망과 고통, 비통함이 있어 한집안의 가장의 양어깨가 무거워져 아버지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를… 우리네 평범한 아버지들을 상상하며 감상 해보라고 했다. 한참을 조용히 감상하던 중학생 어린나이의 조카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로 가득 젖어있었다.

잠시 여유가 있다면 유튜브에서 바흐의 ‘샤콘느’를 꼭 감상하기를 권한다. 이 작품은 여러분들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바흐의 ‘샤콘느’는 가족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당신의 이야기가 된다.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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