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로 보는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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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로 보는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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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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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 자신 (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식생활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하지만 식생활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곧 우리 자신 (you are where you live)’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도시의 영향을 온 몸으로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삶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사는 도시에 맞추어지게 된다. 도시가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끄엘룰은 ‘도시의 의미’라는 책에서 도시는 사람의 정신과 영혼까지도 영향을 주는 무서운 체계일 수 있음 지적한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지만, 도시는 다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해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흥행한 ‘조커’라는 영화가 오래 여운이 남는다. 영화 속 배경인 ‘고담’이라는 도시의 지리적 여건은 여러 모로 포항을 떠올리게 한다. 동해안에 자리 잡은 이 항만 도시는 원래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고, 산업화 이후에 급격히 고용 인구가 늘어나면서 대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고담에는 언제부터인가 쇠락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물류가 끊어진 항만은 인적도 없는 어두운 장소가 되어갔고 산업시설들은 빈 창고로 전락했다. 한 때 산업 역군이던 실업자들은 일용직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삶을 포기한 노숙자들은 뒷골목을 채우고 있다. 거리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가지만 무력해진 시 정부는 이를 제때 치워줄 인력도 고용하지 못한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던 지역 경찰은 결국 하나 둘씩 매수되고, 범죄조직은 사실상 도시의 권력으로 공공연히 자리 잡아 간다.

바로 여기서 조커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 피에로 분장을 하고 이벤트를 다니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이벤트라고 해 봤자 주로 폐업정리일 뿐이고 그가 희망하는 밝은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영화 초반 주인공은 삶을 재생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한다. 팍팍한 삶에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문제도 가지고 있지만, 삶을 포기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곧이어 좌절된다. 그나마 의존하던 공공 상담 프로그램마저 시 재정 악화라는 핑계로 갑자기 취소되어 버린 것이다. 조커라는 희대의 악인은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담시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이겠다. 하지만 내게는 재생 없는 도시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하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환경여건은 사람의 됨됨이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교육환경, 가정환경은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보는 여건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있는 도시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재생이 사라진 도시는 결국 구성원의 삶을 재생해줄 여력도 잃게 된다. 좌절의 순간에 들릴 수 있는 상담소가 있는 도시, 우울한 나날에 밝은 빛과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산책할 코스가 있는 도시, 밤에라도 걱정 없이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도시 - 당연한 것 같은 도시의 기능이지만, 우리 삶을 지속하기 위해 너무나 중요한 여건들이다. 그리고 이를 모두 갖추고 있는 도시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쇠락하는 도시들에서 이런 기능들은 하나 둘씩 포기되어가기 때문이다.

최근 심각하게 쇠락해가는 일본이나 서구 도시들의 모습을 특집으로 다룬 신문기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도시 폐쇄로까지 이어지는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면서 도시재생이 선택이 아닌 생존 차원의 문제로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정말 생존위기에 몰리는 것은 도시 자체가 아니다. 그 구성원들의 인생이다. 실패하고 쇠락하는 도시는 우리의 생활과 삶까지도 얽어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결국 사람에 대한 문제이다. 도시재생에 대해 정책가들은 보다 성실해야 하고 시민들은 더 절실해야 한다. 어느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인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담 시는 영화적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전철을 밟아간 현실의 도시도 적지 않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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