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탑산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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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탑산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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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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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임경업 장군은 평소 두 자루의 검을 곁에 두었다고 한다. 장검인 용천검(龍泉劍)에는 “석자 용천검은 만권의 책이로다. 하늘이 나를 냈으니 그 뜻이 무어더냐. 산동에선 재상이 나고 산서에선 장수가 난다고 하나 너희가 사내라면 나 또한 사내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있고, 단검인 추련검(秋蓮劍)에는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니, 한번 나고 죽는 것일 뿐 장부의 한평생 나라의 은혜 갚을 마음뿐이로다. 삼척 추련검 십년을 갈았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그의 장부다운 기질과 국가보은에 대한 충성심이 두 칼에 오롯이 담겨있다.

탑산에 올라 충혼탑 호국영령께 인사를 올렸다. 탑산은 비록 산세는 나지막하지만 거창한 여러 이름을 가진 산이다. 산의 형세가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봉황산’ 이라고 하고, 말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라 해서 ‘주마산’ 이라고도 하며, 대나무가 우거졌다고 해서 ‘죽림산’ 이라 불리다가 1957년 8월, 이곳에 충혼탑이 건립된 후부터 ‘탑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은 이름 없는 산이 드물다. 그중 가장 흔한 이름이 앞산이고 그 다음으로는 남산, 서산, 동산 등이다. 이러한 산의 이름은 마을을 중심으로 산이 배치된 위치에 따라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산의 형세나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이름 붙이기 모호할 때 주로 붙여진 이름들이다. 우리 삶 자체가 자연과 가까웠고 또 자연을 닮았다는 의미하기도하지만 무엇보다 자연지물 하나도 우주원리로 보면 헛된 존재가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마을 앞에 있으면 앞산으로 불렸고, 남쪽에는 남산, 서쪽과 동쪽에는 서산과 동산이 되는 것이다. 굳이 방향성을 넣어서라도 이름을 붙여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의 산은 유독 의미로 해석하기보다 산 전체 생김새를 파악한 후 형상에 합당한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 있는 산 일지라도 산 이름만 듣고서도 얼추 형세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산이다. 충혼탑이 있는 탑산의 과거 이름들이 명명된 유래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산의 형세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지막한 산 하나에 그토록 많은 이름이 붙여졌지만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은 탑산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봉황, 주마, 죽림이라는 형태에서 딴 산 이름보다는 호국영령을 모신 탑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근사한 여러 이름을 기억에서 지워버릴 만큼 탑산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로 남아있을까. 세대가 바뀌어 전쟁의 흔적은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과거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며 피땀으로 쌓은 인물보다 오히려 북쪽의 인사를 더 인정하려 드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더라도 탑산의 의미는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자유, 평화, 고향, 가족이라는 단어의 절실함은 어쩌면 전쟁터에서 더 가치를 획득하는 개념어일 것이다.

우리 삶에서 자유, 평화, 고향,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느 날 일상에서 잊힌 단어들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면 틀림없이 특별한 의미작용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끈과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고 또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찾는다면 과거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시간의 끈일 것이다. 동족의 싸움에서 어린학생들과 무명, 유명 장병들의 피 흘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생명으로부터 이탈하지 않은 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곳 충혼탑에는 김춘식 외 47명과 1394위 영령이 군번도 없이 모셔져 있다. 이들이 처절하게 싸워야만 했던 그 전쟁은 무엇을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이들이 적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자유, 평화, 고향, 가족은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다고 믿는 것과 동질의 감정일 수 있을까. 이들은 비록 군번도 없이 이름마저 잊혀진 영령이 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나지막한 산 하나 바쳐 그 이름 탑산으로 영원히 기억해도 모자람이 있을 것이다. 탑산은 소외된 채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탑산의 영령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부터 모래벌에 기둥 세워 근대화를 추동한 제철산업의 시작과 번영까지 빠짐없이 지켜보았으리라 생각한다. 탑산의 충혼탑은 여전히 포항 전체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다. 포항의 수호신이 되어 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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