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그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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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손님 그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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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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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지난주 시내 도서관에서 시민대상 강의를 진행했었다. 참여하신 분 중에 효곡지구 쪽에서 오신 분이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차는 어디 하셨냐고 물었더니, ‘그린웨이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대답하신다. 그렇다. 이게 바로 우리가 바라던 그린웨이 사용법이다. 시민들이 자전거로, 보행으로 도심을 찾아와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그린웨이의 기능이다. 포항 그린웨이는 ‘백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철도 역사 백년 만에 처음으로 철로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항의 철도 노선은 보다 특별하다. 노선이 도심부를 제대로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도심 공동화가 문제되는 시기에 찾아온 철도 부지는 그야 말로 하늘의 도움에 다름 아니다. 백년손님이 타이밍도 적절하게 찾아준 격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린웨이는 단순한 산책로나 숲길이 아닌, 시민사회에 대한 오랜 철학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그린웨이 개념은 ‘공원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프레더릭 옴스테드에 의해 1800년대 중반에 제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복잡다단한 현대도시에서 ‘시민공간(civic place)’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시민공간이란 민주공화국의 시민들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장소를 의미한다. 서로 계층과 인종이 다를지라도, 시민공간에 나와 쾌적한 환경을 즐기면서 개인들은 비로소 하나의 시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그는 믿은 것이다. 시민공간은 이런 점에서 하나의 사회적 용광로이다. 이 용광로를 통해 지역의 공동체가 형성되며, 이질적인 개인들이 하나의 시민사회 국가로 변모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린웨이는 시민공간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이다. 시민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라, 여기 저기 흩어진 시민들의 삶터를 직접 찾아가는 형태의 시민공간이기 때문이다. 공원보다도 스타벅스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대에 시민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양극화의 시대, 도심 공동화의 시대에 시민공간 개념에 담긴 철학은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다.

포항 그린웨이 1구간이 개설되었다지만,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 주변 지역이나 대중교통과 잘 연계되어 있지 못하다. 그린웨이가 도시와 결합하지 못한 채 다소 겉돌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도시와 그린웨이를 점차 결합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1구간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장차 2구간, 3구간으로 확장하여 장차 포항시 전체를 감싸는 순환형 그린웨이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벌써 위기가 찾아온 것 같다. 위기의 진원지는 그린웨이 중심부에 놓인 철도역 부지이다. 역사 건물의 급작스런 철거와 도로 개설도 아쉬웠지만, 지금 진행되는 철도역 부지의 개발 방향은 더 큰 우려를 자아낸다. 지금 상황으로는 이 곳에 판매시설과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비어가는 도심부에 인구 유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상지가 백년 만에 한번 찾아 온 그린웨이, 그것도 그 한가운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좀 더 신중하게 큰 그림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보스턴의 그린웨이 계획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스턴 그린웨이는 1800년대 후반에 계획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처음에 도시 외곽의 숲길과 바닷길을 연결하면서 시작된 그린웨이는 오랜 과정 끝에 1990년대에는 마침내 도심부까지 들어오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엮어주는 그린웨이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그린웨이가 단기적 개발 사업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어야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포항은 여러 모로 보스턴과 유사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린웨이 체계에 있어서 포항은 보스턴보다 훨씬 나은 점을 가진다. 바로 도심부를 관통하는 철길이다. 보스턴이 오랜 기간 동안 애써 조성한 도심부 그린웨이가 포항에게는 처음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끈질긴 전략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만들어간다면 포항 그린웨이는 세계적인 성공사례가 될 만한 잠재력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린웨이는 백년손님이다. 다시 반복되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이다. 이렇게 귀한 손님을 마치 아무 때나 오는 옆집 친구처럼 대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저 흔한 가용지 중의 하나처럼 개발하고 마무리한다면 또 다른 백년은 후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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