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길, 패망의 성(城)
  • 경북도민일보
문명의 길, 패망의 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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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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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무렵 장기읍성 북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성곽에 오르자 장기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기읍성은 높지 않은 산세를 활용해 돌로 쌓아 올린 전형적인 산성(山城) 형식과 왜적 방어를 위한 읍성(邑城) 형식을 두루 갖춘 성곽이다. 성내에는 향교가 있고 옹기종기 몇 가구가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어 오래된 마을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성곽은 마을 전체를 감싸듯 산등성이를 따라 돌을 쌓아 축조되었다. 성곽에 올라서면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마을을 중심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읍성이다. 굴뚝연기가 피어나는 곳에서 인기척이 들릴 정도로 성곽과 마을은 지척이다. 그 옛날 왜적들이 상륙하면 처음 마주했던 장애물이 이 작은 읍성이었다. 장기들녘이 여명에 붉게 물들었다. 지붕에 오른 수탉이 목청 높여 울어보지만 왠지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성곽은 전쟁의 산물이다. 이름 없는 수많은 죽음이 남겨놓은 슬프고도 안타까운 역사를 담은 현존하는 문화물이다. 동시대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어시설이라는 점에서 적과 아군을 극단적으로 구분 짓는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수비하는 쪽은 성곽을 최대한 크고 높게 쌓아야 방어에 유리했고, 공격하는 쪽은 수비군에 비해 몇 배의 기동력과 병력을 갖추어도 인적·물적 손실을 각오해야만 했다.

우리나라 성곽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되어있다. 가파른 산세를 그대로 이용해 돌을 쌓은 산성의 형식과 평지에 흙이나 돌을 쌓은 평지성이다. 이들 성곽 대부분은 도성(都城)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수호하는 수비군을 지원하는 산성이거나 백성들의 생업지인 고을에 읍성을 쌓아 유사시에 백성들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규모에 비해 성곽의 형식뿐만 아니라 수적인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웬만한 산이나 도시에서 산성과 읍성 한 두 개정도는 흔히 볼 수 있어 그야말로 국토전체가 성곽에 둘러싸인 미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역사에서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성곽은 없었다.

1636년 동짓달이다. 청 태종 홍타이지는 15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 정벌에 나선다. 당시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과의 의리를 내세우며 ‘오랑캐’ 청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호언했다. 얼어붙은 한강을 파죽지세로 건너온 용골대는 “너희가 선비의 나라라더니 어디에도 나를 맞이하는 자가 없구나”라며 조롱했다. 경기도 광주 쌍령리 전투에서 청나라 기병 33기가 2만의 조선군을 궤멸시켰다.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히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이때 청 태종이 남한산성에 서신을 보낸다. “몸뚱이는 밖으로 내어놓고 머리만 처박은 형국으로 천하를 외면하려느냐.” “너희는 벼루로 성을 쌓고 붓으로 창을 삼아 내 군대를 막으려 하느냐.”며 항복을 종용하였다.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은 1564년까지 다섯 차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이중 네 번째 전투는 일본 전쟁사에서 전설적인 전투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전장에서의 그의 전투방식은 오로지 공격이다. “사람이 곧 성이고 성벽이며 해자다”라고 말할 정도로 천지에 함락할 수 없는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성을 버리고 주로 그의 저택에 거주하며 전장에 출전했다고 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 황량한 초원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있다. 돌궐 제2제국의 재상인 아시테 투뉴쿠크(Tonyukuk)의 비석이다. 그는 본래 당나라의 장수였으나 돌궐의 반란에 가담해서 당나라와 맞서 싸운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의 비석에는 돌궐의 고대문자로 새겨져 있는데 “성을 쌓는 자 반드시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살아남는다.”고 되어있다. 말을 타고 유럽대륙까지 휩쓸었던 몽골리언 기질이 고스란히 담긴 문구이다. 그들에게 성곽을 쌓아 정주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길을 열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유목본능이야말로 생존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식량만 준비한 채 신속하게 적을 평정하고 필요한 자원은 점령지에서 조달한 후 다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전투방식은 당시 어떠한 군대도 대적할 수 없었다. 중국이 기원전 220년부터 쌓았던 만리장성도 결국 1271년 이들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원나라와 청나라로 세워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곽을 쌓은 민족은 패망의 길을 걸었다. 반면 경계를 넘고자 길을 뚫었던 민족은 동시대 세계사를 자국 중심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문명을 일으켰다. 그리스가 인도까지 진출하면서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고, 로마에 의해 유럽대륙은 처음으로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한층 동질화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몽골은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하며 유라시아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 대부분은 성곽 쌓기만 열중한 방어의 역사이다. 개항기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물밀 듯이 몰려와 통상을 요구하던 시대에도 우리는 성을 쌓기에 바빴다. 50여 년 전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던 시점 변형윤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상대 교수 전원은 “고속도로를 만들면 부자들이 기생들과 첩들을 싣고 유람 다니는 도로에 불과할 것”이라며 혹평을 퍼부었다. 이때 야당 정치인들도 합세해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건설”이라며 공사 중인 고속도로에 드러누워 반대했다. 그로부터 다시 50년이 지났다. 지금도 우리는 비행기와 배를 타지 않고서는 외국으로 갈 수 없는 섬나라나 다름없는 신세이다.

환동해시대를 마주한 현 시점에서 국제사회로 연결된 포항의 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역사는 하늘로 바다로 육지로 길을 뚫은 사람들이 이끌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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