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귀소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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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귀소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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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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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는 말과 글이 있다. 옛날에는 만나서 얘기하고 멀리 있는 곳에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고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정보화란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면서 그 판도가 엄청나게 바뀌었다. 변화뿐만 아니라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다.

휴대전화를 보자.

몇 달 전에 구미에 있는 삼성 스마트폰 공장을 방문했다. 삼성 휴대폰의 발전상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1988년 처음 나온 무전기 같은 커다란 기종부터 지금까지 나온 5G까지 2,400여 대가 넘는 종류를 전시해둔 것을 보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 숨 가쁘게 달려온 IT 강국의 생생한 모습을 보면서 긍지와 자부심도 느꼈다. 현대 최신 정보화 기술이 총집결된 도깨비방망이 같은 휴대전화로 인해 우리 생활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휴대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공부할 때, 여행할 때, 잠잘 때, 언제 어디를 가나 꼭 곁에 두어야 마음이 편한 물건이다. 이것은 이젠 생활필수품이요 충실한 비서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옆에 친구나 가족은 없어도 되지만 휴대전화가 없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신기하기도 하도 무섭기도 하다. 인간은 자기가 만들어낸 희한한 물건에 매료되어 그것을 사람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었다.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에 묶여 사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로 주고받는 대화가 편리할 뿐 아니라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공부 시간 중에 눈은 선생님을 보고 손은 책상 밑으로 해서 친구와 문자 보내기를 한 시간에 열 번 이상은 한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그냥 애교로 보고 넘어가자.

SNS를 통해 상대방의 한 말에 대해 온갖 얘기를 다 올리고 뭇사람이 달라붙어 욕하고 손가락질하며 갖은 악담을 쏟아내기도 한다. 연예인 중에는 그 악담을 견디다 못해 최후의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일을 외신까지도 너무 심하다고 논평하고 있다. 그런 몹쓸 행위를 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모두 떠나버린다. 죄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다. 한두 사람이 아니고 엄청난 사람들이 집중 공격을 하면 상처받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금 이상한 이야기가 있으면 댓글이 달리고 그것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처음은 바늘같이 가늘고 보잘것없던 내용이 입과 입을 넘나드는 사이에 대들보 같은 아름드리 기둥으로 변신해 버린다. 악마의 둔갑이다.

남의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SNS나 블로그를 통해 사회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여론이 난도질당하기도 한다. 말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정신적 피해가 엄청나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사회 현상은 정신세계의 공허함과 빈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말과 글은 사람됨을 나타내주며 인격의 잣대다. 내면이 깊고 무게가 있으면 결코 가벼운 말을 내놓지 않는다. 그것이 인품이다. 인품을 나타내는 요소는 말, 행동, 표정의 셋이 있다. 인품은 이 셋의 결합체이다. 이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같이 입은 표현 도구로써 그만큼 중요하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과 거침없고 폭풍우같이 온갖 수식어를 다해 쏟아내는 선동적인 말과의 차이에는 진실의 무게가 다르다. 오랫동안 울리는 징 소리의 은은함과 요란하게 두드리는 빈 깡통의 시끄러움과는 구별이 된다.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물 흐르듯 가슴과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살면서 짓는 죄업에는 행동으로 짓는 죄, 말로 짓는 죄, 생각으로 짓는 죄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셋 중에서 말로써 짓는 죄가 가장 무겁고 크다. 남을 비난하거나 모함하는 말에는 나쁜 기운이 잔뜩 들어있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상대를 해치게 한다. 말의 기운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작용하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것이 언어의 마력이다. 칼에 찔린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지만, 말에 의해 받은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정성을 다해 기도문을 외고 복을 비는 것은 그 대가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항상 말은 조심하고 글을 쓸 때는 다듬고 다듬어서 남에게 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역사 속에서 말 한마디로 오해를 받아 목숨을 잃은 일이 숱하다.

조선 시대 1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파격적으로 27세에 병조판서가 된, 남이장군이 어느 날 저녁 혜성이 긴꼬리를 내는 것을 보고 “ 묵은 것이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올 징조로구나.”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유자광이 임금에게 남이장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하여 처형당하게 된다. 훗날 역사는 이 사건에 대해 유자광을 심판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도 털어놓고 못 할 말이 있고, 부모 자식 사이에도 지켜야 도리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인터넷에 할 말 못 할 말 마구 쏟아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현들의 좋은 말들을 모아 엮은 아동의 인성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명심보감에“남을 상하게 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상하게 하니, 피를 입에 머금고 다른 사람에게 뿜으면 자기 입부터 더럽히게 된다.”라고 했다.

말과 글의 힘은 엄청나다. 그 무게가 상대방을 억누르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유식하게 온갖 비유를 통해 화려하게 포장된 현란한 말과 글로 세상사를 재단하던 어느 대학 교수가, 장관 청문회를 통해 역으로 자신이 한 말과 글로 인해 스스로 얽매어져서 심하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퇴임하던 어느 장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이것이 말의 귀소 본능이다. 이영우 전 경북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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