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호랑이보다 오래 사는 이유
  • 뉴스1
사람이 호랑이보다 오래 사는 이유
  • 뉴스1
  • 승인 2019.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랑이는 늙어서 이빨과 발톱이 빠지면 죽습니다. 반면 사람은 늙어서 일할 힘이 없어도 삽니다. 이유가 뭘까요? 만일 호랑이가 젊을 때 잡은 토끼를 말려서 포를 떠서 보관하고 있다가 나이 들어 그걸 먹으면 되겠죠. 아쉽게도 호랑이는 저장했다가 나중에 먹는 방법을 모릅니다. 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여기에 노후설계의 본질이 있습니다. 사람이 늙어서도 오래 사는 이유는 자신들이 고안한 몇 가지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가 돈(자산)입니다. 호랑이가 젊을 때 토끼를 많이 잡아서 자신이 먹고 남은 토끼를 나이 든 호랑이에게 돈을 받고 팝니다. 나이 든 호랑이는 젊을 때 모아 둔 돈을 늙어서는 젊은 호랑이가 잡은 토끼와 교환하면 됩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화폐라는 수단을 고안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사람은 화폐나 금융자산을 고안해서 자신이 일할 수 없을 때도 생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돈이라는 장치가 사람의 노후 삶을 가능하게 한 셈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이 개념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대중첩(Overlapping Generation)모형입니다. 이 방식은 노후설계를 개인이 부담하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면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부모를 그렇게 존중하면서 모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록들을 보면 부모가 토지를 주는 대신 자식이 자신에게 해주어야 할 의무사항을 구체적으로 써서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백승종 교수의 《상속의 역사》에는 노르웨이 경우 1875년 당시 50퍼센트의 농부들이 은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스웨덴 북부 산간의 경우 1910년대까지 은퇴계약서가 존재했다고 하네요. 계약에는 일주일에 우유를 몇 리터 제공할지 한 달에 고기를 얼마 식탁에 올려줄지 등의 조항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지켜야 자신의 땅을 상속자에게 준다는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퇴계약서는 연금제도가 실시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동양은 효(孝)를 기반으로 합니다. 조선의 경우 효를 국시로 했기 때문에 부모를 잘 모시면 효자비를 세워주었습니다. 혹 어머니가 아픈데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끓여 드렸다는 효행이 알려지면 나라에서 큰 상을 내립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전국 곳곳에서 허벅지 살을 떼어 봉양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늙은 부모님을 자신의 몸처럼 모시는 것을 본 자식은 성장하여 자신의 부모에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돈과 달리 효라는 장치는 노후설계를 가족이 부담합니다.

사람들은 돈도 없고 자녀도 없으면 내 노후는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자식을 낳지 않고 돈도 모으지 않는 수도사는 노후가 어떻게 될까요? 국가를 위해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군인은 결혼을 못하여 자녀도 못 갖게 되면 노후가 걱정되지 않을까요? 이런 걱정 때문에 자신의 본업에 충실할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사나 성직자 혹은 군인에게는 그 조직에서 연금 형태로 생활비를 주어 노후를 돌봐 주기도 합니다.

이것이 최초로 체계화된 국가가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입니다. 비스마르크는 1880년대에 사회입법을 추진하여 세계 최초로 의료보험, 산재보험, 노령연금을 도입했습니다. 1889년에 도입된 노령연금은 2천 마르크 미만 소득의 노동자는 의무가입이었고 70세에 달한 자에게는 노령연금을 제공했습니다. 보험금 부담은 회사와 노동자가 반씩 부담했다고 하니 현대의 노령연금 제도와 다를 게 없습니다.

요즘처럼 인구구조가 달라지면 노후 장치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이들 장치는 기본적으로 젊은이 숫자가 노인보다 많아야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효는 자식들이 많고 부모의 수명이 길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사회에 저출산·고령화가 되면서 이미 효라는 시스템은 취약해져 있습니다. 국가의 연금제도 역시 인구구조가 피라미드처럼 되어야 가능하지 피라미드가 뒤집힌 모양의 인구구조가 되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적은 수의 젊은이가 많은 수의 노인에게 연금을 줄만한 재원을 갹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어느 하나의 길만 선택하는 단선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들은 자녀들이 부모에 관심을 다시 갖고 가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미국의 버클리 대학은 학교 안에 교수가 노부모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국가의 연금제도는 고령화가 심화되면 재정난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시스템보다 믿을만합니다.

이 세 장치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노후자산을 잘 축적해서 대비해야 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의 연금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대간에 서로 양보하면서 세대통합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고령화라는 부담을 어느 한 장치가 모두 지탱할 수 없으며 개인, 가족, 국가가 세 솥발처럼 지탱해야 합니다.

사기 맹상군열전에 ‘꾀 많은 토끼는 굴이 세 개 있어 죽음을 면한다(狡?三窟 能而免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상군은 풍훤의 지혜로 세 가지를 갖추어 자신의 삶의 토대를 견고하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랑이보다 더 오래 평안한 삶을 누리려면 자산, 가족, 국가라는 세 장치를 고루 잘 갖추어야 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