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예술 웅숭깊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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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문화예술 웅숭깊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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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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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운의 視線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구룡포가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구룡포에서 촬영하면서부터 주인공 동백이 운영한 술집 ‘까멜리아’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드라마 한편이 인기를 끌자 그 덕분에 촬영지까지 덩달아 명소가 된 것이다. ‘동백꽃 필 무렵’의 주 촬영지인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된 세트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본래 이곳은 1906년 가가와현의 어업단인 ‘소전조’ 80여 척이 고등어와 꽁치를 잡기위해 고기떼를 따라 구룡포로 들어오면서부터 일본어민들이 이주하여 만들어진 마을이다. 약 5백 미터 거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현지에서 유행하던 목조 가옥들이 다양한 형태와 구조로 줄지어 남아있다. 현재 ‘호호면옥’ 간판이 붙어있는 건축물은 당시 구룡포에서 가장 좋았던 숙박시설인 ‘대등여관’이었다. 일본식 찻집인 ‘후루사토’는 80년 전까지 이곳에서 인기를 끌었던 요리집 ‘일심정’이 영업하던 자리였다. 일본풍으로 된 2층 목조 건축물인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본래 가가와현에서 이주한 하시모토 젠기치라는 사람이 살림집으로 기거하던 것을 그대로 활용했다.

오래전 포항시는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를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목조 가옥의 특성상 오랜 시간 방치되어 손상이 심각한 건축물은 새롭게 복원하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던 건축물은 일부 수리를 하여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내었다. 지역의 작가를 통해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를 소개하는 단행본을 일본에서 배포하자 좋은 반응이 일어났다. 이것을 계기로 일제강점기 구룡포에 이주해 살았던 일본인 후손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었고 이곳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호기심과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는 지속적인 관광효과는 거둘 수 없었다. 한일관계가 위안부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소원해지자 요즘 이곳을 찾는 일본인은 별로 없다.

일제강점기의 적산(敵産)일지라도 문화물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이다. 일제의 잔재라 하여 100년 넘은 건축물을 일시에 철거해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는가 하면 수리하고 복원하여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여 새로운 가치를 발휘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백범 김구선생은 우리민족의 융성은 문화에 달렸다고 했다. 문화와 이것을 녹여 담은 문화물도 지나치게 개입하면 웅숭깊은 맛이 사라진다. 즉 문화물은 그것이 존재한 동시대성이 그대로 보존되어야 유일적 가치를 가진다. 주말이면 5천명이 넘는 관광객이 구룡포를 찾아온다. 이유는 인기 드라마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10여 년 전에 완성한 일본인가옥거리가 어느덧 숙성되어 당시 의도했던 것과 다른 맛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5천년을 이어 온 민족의 문화는 흔하지 않다. 백범의 ‘문화융성론’은 어쩌면 뿌리 깊은 우리역사에서 나오는 독특하고 깊은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일민족은 있을 수 있어도 단일문화 즉 고유문화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행동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1976년 그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를 모방하고 복제하는 유전자를 밈(Meme)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였다. 밈은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이 가진 행동양식이나 의식이 타인 또는 다른 집단에게 마치 감기바이러스가 순식간에 감염시키듯 모방하게 하고 이때 자기복제를 통해서 다시 다른 집단에게 전이시키는 것은 말한다. 문화란 모방, 진화, 모방이라는 머리가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구조이다. 그런 이유에서 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주류의 알 수 없는 집단적 에너지 장(場)을 통해 확산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문화적 동화현상이라 한다. 미국의 생물학자 라이언 라슨이 일본의 사치시마에 살고 있는 원숭이에게 우연히 고구마를 주었다. 처음 원숭이 한 마리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기 시작하자 얼마 후 다른 섬에서 살고 있는 같은 종족의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언 라슨은 이것을 “100마리 속 원숭이 현상”이라 명명하고, 원숭이 무리 속 페이스메이커가 제3의 장, 즉 정보공유의 장에서 문화를 주도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원숭이 집합들이 이루어내는 에너지 장 내에서 새로운 정보들이 서로 교환, 분석, 공유되는 것을 의미한다.

IT관련 사업을 처음 시작할 즈음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애플사와 온라인시장 개척을 위해 협업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티브 잡스는 화가 ‘피카소’와 ‘마크 로스코’의 예술세계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이미 취미를 넘어서고 있었다. 대표의 취미론이 글로벌기업 애플의 기업문화에까지 점차 스며들기 시작하자 마침내 모든 제품에서도 예술적 감수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기존 휴대폰과는 전혀 다른 형태, 형식, 그립감은 글로벌시장을 석권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주었다. 경쟁사 대부분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애플 휴대폰에 적용된 특이점을 분석하기에 이른다. 애플은 안드로이드 휴대폰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적용하고 초기화면에서 모든 앱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배치해 사용자중심에서 다양한 장소로 시각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하였던 것이다. 애플이 고안한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입체파의 창시자인 피카소의 미술론을 역으로 응용한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화가가 하나의 사물을 각각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장면을 한 화면에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구성한 것이다. 애플은 사용자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었고, 앱의 시각화로 정보의 플랫폼을 탄생시켰다. 이때 참여한 애플의 디자이너는 40여명에 불과했다. 이들 대부분이 40~50대 가 주축이었던 반면, 삼성의 디자이너는 1000여명에 달했었고, 20~30대가 주축을 이루었다. 스티브 잡스가 위대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삼성보다 연령이 높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개발하면서 이들의 경험을 제품에 녹여 담고 여기에 문화·예술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묵직한 괴물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물론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가 디자인 전반을 이끌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의 형태와 앱의 배치방식 등 대부분은 애플에서 나온 것이다. 애플의 디자인은 가볍지 않다. 묵직함이 배어나는 문화·예술적 감성을 동원하고 있어 기계의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현대예술이라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문화예술은 역사만큼 그 사람만큼 웅숭깊음이 품격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포항의 문화예술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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