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매의 아픔, 손절매의 용기
  • 뉴스1
손절매의 아픔, 손절매의 용기
  • 뉴스1
  • 승인 2019.1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절매는 손해(損)를 잘라(切)버리는 매매(賣)라는 뜻이다. 주식 투자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절매, 즉 손실을 인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가지고 손실 폭을 최소화하는 규칙을 실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만약 손절매를 두려워하고, 과감하게 사용하지 않게 되면 조금의 손실로 막을 수 있는 계좌를 암덩이처럼 키워 몰락의 길로 갈 수 있다.

남북관계가 점점 더 꼬여가는 듯하다. 북한과 미국의 북핵협상은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하는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의 결단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더 이상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외치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최강의 미군 군사력을 북한에 사용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또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종속이라는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듯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평창올림픽 이후 급물살을 탄 남북관계의 해빙을 바라보며 국민들이 가졌던 희망과 기대감이 실망과 배신감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축구 대표 팀이 평양의 텅 빈 경기장에서 뛰어야 했다는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나포된 북한 선원들의 북송을 서둘러 결정한 사실을 통일부 대변인의 입이 아닌 카메라에 포착된 청와대 안보실 차장의 휴대폰을 통해 알게 되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한 ‘기분 나쁜 금강산 남쪽시설 싹 들어내라’는 발언을 놓고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이 ‘정비가 필요하긴 하다’고 한 발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다시 한 번 불편해 졌다.

이제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리 남북관계에 전문성과 확신에 찬 정부 담당자라고 해도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라는 연료가 떨어지면 더 이상 남북관계라는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남북관계의 끈을 이어가고자 했던 현 정부의 의도를 많은 국민들은 진심으로 지지했다. 평창 올림픽부터 이어진 남북 북미 회담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기대를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방향성과 정책을 지지했던 많은 이들도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남북관계에 손절매의 시간이 온 것 같다. 북미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남북관계인 만큼 북미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전략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 북미회담을 포함해 몇 번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것은 돌아보면 뼈저리게 아프다. 하지만 미련이 남는다고 무리수를 더 두는 것보다는 손절매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쉬운 감정을 뒤로 하고 조금 더 긴 호흡과 냉정한 이성으로 현 상황을 재평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배타적 특수성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북한을 국제적 기준으로 객관화시켜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호주의적 특수 관계에서 북한을 존중하고 인정하되 대한민국이 세워온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의 가치체제가 북한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북한의 인권에 대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것,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아오는 탈북민에게 2등 시민이라는 열등감을 주지 않고 진심으로 환영하는 노력을 무시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교류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 처음에는 북한의 반발과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을 두고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여러 세계 사례들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전환이다.

또한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북한개발을 지원할 준비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품격을 훼손시키는 언어와 태도를 더 이상 정당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파트너가 되려는 의지와 함께 북한 당국자들에게 대한민국에게도 분명히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렇다. 마음이 편해서, 좋아서 손절매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손절매의 아픔을 감내하고 호흡을 고르고 또 다른 기회를 노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능력을 가진 자만이 주식시장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듯이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평창올림픽부터 시작된 남북관계의 급상승의 모멘텀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수는 손절매일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남북교류의 방향과 태도를 확립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주변국들의 거친 발언과 밀침을 감당해 내고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한반도를 만들어 내는 길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누리는 남북관계의 회복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정훈 아주대 평화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