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포항의 새 신화 환동해 국제도시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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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포항의 새 신화 환동해 국제도시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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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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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운의 시선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전 세계에서 해와 달의 신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은 포항이 유일할 것이다.

인덕산 아래에는 작은 동네가 있는데 바로 원동이다. 지금은 비행기가 포항공항으로 하강하는 이 자리는 기원전 신라가 건국되기 전 사로국을 중심으로 진한 12국이 있던 시절에 12국 중의 한 부족국가인 근기국의 고현성이 있었던 자리이다. 성터 앞에서부터 오어사 계곡까지 고인돌 군이 있는걸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일부 터만 남아있다. 근기국은 신라8대 아달라왕 때 신라로 편입되었고 이곳에 있던 연오랑 세오녀는 도기야(도구)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지배세력이 되었다. 연오랑 세오녀의 일월신화도 여기서 시작된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년) 동해에 살고 있는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니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가 일본에서 보내온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다고 하고 그 비단을 보관했던 창고의 이름이 ‘귀비고’ 라고 한다. 이 내용에 근거해서 동해면 임곡리 청룡회관 근처에 ‘귀비고’를 짓고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을 조성했다.

일부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연오랑 세오녀는 철기를 생산하는 부족장이었는데 이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일월지 옆에 있는 제철소에 불이 꺼졌고 일본에서 세오녀가 비단에다 제철기술의 비결을 적어 보내서 제사를 지내고 적힌 그대로 시행하니 용광로에 불이 들어와 제철사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포스코는 1800여 년 전 건너갔던 출발지에 다시 돌아온 모양새가 된다. 지금도 청림에서 도구에 이르는 바닷가의 백사장은 사철이 많아 여름이 되면 너무 뜨거워서 맨발로 다니기 힘들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시금치는 철분성분의 함유량이 높기로 유명하다.

진흥왕 이후로 신라 왕실에서는 제실를 신광에 두고 제철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포항은 오래 전부터 철을 생산해 국가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지역이다. 철을 생산하려면 사철을 모으고 적송으로 장작을 삼아 72시간 불을 때워야 하는데, 당시의 제철산업은 많은 물과 적송이 필요로 했다. 오천 해병대 안에 있는 연못 일월지는 오래전 연오랑과 세오녀가 제철소를 운영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선조 때 영의정 류성룡은 임진왜란의 초기에 일본과의 전투에서 밀린 원인을 ‘나무의 부족’으로 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오랫동안 비가 많이 와서 숲이 우거지고 적송이 무성했는데 비해 우리는 오랫동안 가물어 나무가 턱없이 부족하여 철을 생산해 낼 수 없으니 농기구나 무기, 화살촉을 만들 여력이 부족해서 전력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의 귀비고에서 영일만을 바라보면 포스코와 영일만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철 보국을 이루었고 포항공대를 만들어 미래를 준비한 박태준 회장의 정신은 연오랑 세오녀 이후에 최고의 신화를 창조했다. 포항의 첫 번째 신화가 연오랑 세오녀의 일월신화라면, 두 번째 신화는 박태준의 포스코 신화라 할 수 있고, 세 번째는 ‘환동해 국제도시 포항’이 될 것이다. 포항은 스페인의 빌바오, 스웨덴의 말뫼, 미국의 피츠버그처럼 철강도시로 발전 융성하였다가 새롭게 변신하여 살아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철강과 조선 산업의 중심으로 번창했던 빌바오는 1980년대에 들어와 실업률이 35%까지 떨어지고 조선소는 흉물스러운 고철덩어리로 변했으며 범죄자는 늘고 오염된 네르비온 강은 공해로 찌들려갔고 1983년엔 설상가상으로 큰 홍수로 구도시지대가 완전히 물에 잠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빌바오는 새 출발을 시도했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빌바오가 속해있는 바스크 지방정부는 반반씩 투자해서 도시재생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서 성공한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절망적인 도시에서 시민들의 행복을 되찾고 관광객들이 북적대는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기 까지는 다각적인 노력이 있었다. 항구를 정비하고 죽어가는 네르비온강을 살려내면서 도시가 살아났고 그 가운데 ‘프랭크 게리’가 창의적으로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리함으로서 새로운 일자리들이 늘어나고 도시는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피츠버그는 세계 최대의 석탄지대의 중심이며 미국 제1의 철강 산업 도시였다. 1970년대 이후 철강 산업의 쇠퇴와 함께 도시가 쇠락하다가 1980년대 이후 재건을 시작했고 ‘도시구조조정’을 실행했다. 자동차용 전문 철강과 같은 특수철강 산업, 의료산업, 생명과학, 영화산업의 육성 등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도시재건에 성공한 모델로 유명해졌다.

‘말뫼의 눈물’로 잘 알려진 도시 스웨덴의 말뫼는 19세기부터 조선 산업의 절대강자였다. 1980년대부터 쇠락한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는 폐쇄됐고 홀로 서있던 대형 크레인은 2002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번성한 도시의 상징물이었던 대형 크레인이 1달러에 팔렸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울었다고 한다. ‘말뫼를 보고 정신 차리자’라고 했던 타산지석의 대명사 말뫼는 1990년대 쇠퇴하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지식 중심도시, 친환경 도시’로 방향을 잡았다. 말뫼 대학을 설립했고 의료와 IT 등 기술 집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산업들을 적극 유치했다. 한때 실업률이 22%까지 치솟았고 GM이 인수했던 SAAB 자동차공장은 3년을 못가고 폐쇄됐다. 절망적인 순간에 정부와 노조, 시민들은 마음을 모아 도시 개발과 산업 전환에 있어서 과감한 시도를 했고 말뫼는 성공의 모델로 인식하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도 빌바오나 피츠버그, 말뫼처럼 하면 될까?

‘조지 길더’는 그가 쓴 책, ‘구글의 종말’에서 중앙집권화된 인터넷으로 만들어진 구글은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했고 이제 구글의 시대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이 구글이 구축한 인터넷 체계의 약점을 해결하는 새로운 기술로 부상하면서 탈중앙화 시대를 열 것이라 예상한다.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 변한다.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강력한 흐름은 교통, 통신 네트워크가 발달한 글로벌 도시가 유행했지만 도시가 서열화 된 단점으로 인해 세계화 시대 자체가 퇴조하고 있다. 1위가 런던, 뉴욕이고 2위가 홍콩, 시드니, 두바이, 베이징, 파리, 토오쿄오 등이고 서울은 3위 그룹에 속한다. 글로벌 도시가 포항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글로벌 거점이 아닌 동북아권이나 동남아권의 거점도시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준 글로벌 네트워크 중심도시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것이 바로‘환동해 국제도시 포항’이다. 이 점에서 포항은 지역과 국제사회가 만나는 환동해 네트워크의 중심도시가 되어야 하고 그 실현성은 환동해 경제공동체의 중심으로 역할 하는 것이다. 그 옛날 포항의 해와 달의 신화가 바다를 통해 탄생하였듯이 21세기 포항의 신화 또한 환동해 국제도시라는 포항의 품격을 높이는 방향에서 탄생할 것이다.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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