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장가 가게 해주세요” 용기낸 편지로 결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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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장가 가게 해주세요” 용기낸 편지로 결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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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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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까지 7번 이사하다 죽장 시장터에 정착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교 진학 포기하고 돈벌이 시작
열심히 신앙생활한 덕일까 손주들과 행복한 말년 보내
정대호 씨 현재 모습.
정대호 씨 죽장우체국 사환 시절.
정대호 씨 죽장우체국 사환 시절.
정대호 씨 부부 현재 모습.
정대호 씨 부부 결혼식 모습.

정대호의 포항이야기<13>

포항에서도 두메산골인 죽장면 현내리에서 1949년에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이사를 무려 7번이나 다녀야 했다.

머슴일로 날품팔이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현내에서부터 외가가 있는 죽장면 합덕 머릿골을 거쳐 안강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안강제일초등학교에 입학한지 6달만에 다시 죽장 일광리 도덕골로 이사했다.

또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입암리 약방 입원실에 임시 거주하다가 안마을로 다시 옮겨 거처를 삼았다가 면봉산식당 옆을 찍고 지금의 죽장 시장터에 정착하게 됐다.

천만다행인 것은 60년 가까이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정말 어린 시절은 혹독한 가난으로 먹고살기가 몹시 어려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밥 숟가락 하나 덜기 위해 누나를 식모살이로 보내야 했으니 지금은 상상도 못할 보리고개 였다.

어머니는 친정에서부터 기독교를 믿어 자연히 우리 형제들은 죽장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장로직분으로 교회 일을 보고 있다. 슬하에 두 딸이 있는데 자연히 아이들의 결혼 배필도 교회를 중심으로 맺어지게 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죽장에서 졸업하고 동지상고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스스로 진학을 포기하고 죽장우체국 사환으로 들어가 3년간 밥벌이를 했다. 그 시절 죽장에는 전화가 거의 보급되지 않아 직접 인편으로 가서 우체국으로 시간에 맞춰 전화받으러 오라고 기별하는 호출전화와 오지인 두마리에 이틀에 한번씩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사환의 일이었다

우체국에 3년 일하다가 이번에는 죽장지서에서 문서를 시내 영일군청과 포항경찰서 등에 전달하는 체송업무를 2년간 했다. 아침에 나가는 버스를 타면 하루에 단 1대 밖에 없는 버스 편으로 저녁이 다 돼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1970년 10월 논산훈련소로 들어가 광주 31사단에 배치됐으나 월남전에는 참전하지 못하고 김신조 때문에 복무기간은 35개월15일로 1년이나 늘었다. 1973년에 제대를 했지만 군대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시절 집안 형편상 장가 가기가 어려웠다. 마침 교회에 새로운 성도가 등록했는데 군위군 의흥면 지서에서 근무했던 안순경 부부였다. 우연찮게 대화를 나누던 중 군위 의흥성결교회에 출석하다가 왔는데 그 교회에는 결혼적령기의 참한 처녀성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용기를 내어 그 교회 목사님에게 편지를 썼다. 말하자면 “죽장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총각인데 제발 장가 좀 가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군위에서 빨리 오라는 전보가 왔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그 길로 달려가 선을 보고 5개월만에 7남매 맏이 였던 아내 김춘주를 죽장으로 데려왔다. 내가 27살, 아내가 23살 때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해 양봉과 대추재배 양잠 등 닥치는 대로 농사를 지어도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경북도지사 특별지시로 뽕나무를 무상으로 줘서 일광리 밭 600평에 다 심었는데 여기서 새 희망이 뽕나무에 열리기 시작했다. 새 양잠기법인 건조누에를 시도했는데 마침 당뇨에 특효로 알려지면서 큰 수익을 올려 아이들을 대학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다. 큰딸은 효대(지금은 대구가톨릭대)를 조기졸업하고 연세대 물리치료학과를 나와 물리치료사로 근무중이고 둘째딸은 농협대학을 나와 근처 농협에 과장으로 근무중이다.

그런데 말년에 이 무슨 축복인가. 친구들은 자식들 다 내보내고 외롭게 사는데 우리집은 두 딸이 얼마 전 모두 죽장으로 들어와 아침저녁으로 손자손녀들의 떠드는 소리에 마냥 행복하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직하게 사니까 늦게나마 복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러나 기쁜 삶을 살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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