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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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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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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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피(Philosophy)라는 영단어는 동양에서 철학(哲學)이란 한자로 번역됐다. 아마도 일본이 근대화과정에서 서양학문을 수용하면서 고심 끝에 만들어낸 용어일 것이다.

필로소피는 다른 학문분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소시올로지(sociology, 사회학)는 ‘사회현상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이며 바이올로지(biology, 생물학)는 ‘살아있는 유기체에 대한 이성적인 탐구’이다.

소시올로지와 바이올로지 뒷부분에는 ‘로지’(logy)라는 접미사가 첨가돼 지적이며 이성적인 학문분야임을 표시한다. ‘로지’는 이성, 계산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로고스’(logos)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러나 필로소피에는 지적인 탐구를 의미하는 로지가 없다. 필로소피는 고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에서 유래한 단어로, 직역하자면 ‘현명(賢明)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소피’(sophy)는 고대 그리스 소피아(sophia)의 파생어로 ‘현명’이다. 소피아는 발음하기도 힘든 유럽학자들의 심오한 사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지혜다.

현명은 상아탑에서 생산되는 고리타분하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삶의 한복판,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시기와 악의가 판을 치는 도시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 그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수용하려는 똑똑함이다.

이를테면 축구 경기장에서는 리오넬 메시와 손흥민이 민첩하고, 문학에서는 괴테와 보르헤스가 감동적이며, 조각에서는 로댕과 자코메티가 압도적이다. 논밭에서는 농부가, 바다에서는 어부가, 하늘에서는 항공비행사가 전문가다.

이처럼 현명한 자는 매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즉흥적으로, 자동적으로 행할 뿐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유한 임무를 발견하고 오랜 기간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해 인내의 수련을 거듭한 자들이다.

현명한 사람은, 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현명한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그(녀)의 언행은 현명이라는 고도의 생각훈련의 가감이 없는 표현이기에 당연하고 시의적절하다. 현명함의 표현이 바로 필로소피의 첫 단어인 필로(philo)이다. 필로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해낸 네 가지 유형의 사랑들 중 하나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 신과의 사랑인 ‘아가페’, 이성간 혹은 동성 간의 사랑인 ‘에로스’ 그리고 친구간의 우정인 ‘필리아’다.

필로는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씨다. 필리아는 도시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 구성원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리아는 단순히 다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이타심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이 친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이 타인보다 더 많은 부, 명예 그리고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겠다는 이기적인 욕심과는 다르다.

우선 자신이 진선미를 추구하는 삶을 실천해 덕을 쌓아야 남들에게도 그 덕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렐레스는 선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한다.

“착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선한 행동을 실천함으로 자신을 돕고 타인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의적인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감정을 수용함으로 자신과 자신의 이웃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니코마코스 윤리학’ 1169a12–15)

‘철학’은 어려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남긴 난해한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짧은 인생에서 완수해야 할 고유한 임무를 발굴하는 현명이며, 그것을 온전히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매순간 옮기려는 수고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제 2의 자아’로 삼아 가장 아름답게 실천하려고 시도한다. 그런 수고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다.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65년)는 인생말년에 자신의 삶의 철학이 담긴 내용을 편지형식으로 남겼다.

로마식민지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출생한 세네카는 로마로 이주해 변호사가 돼 출세가도를 달리던 중, 정쟁에 휘말려 코르시카섬에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다.

클라디우스의 두 번째 부인인 아그리피나의 도움으로 49년에 로마로 돌아와 당시 12세였던 미래 황제 네로를 가르쳤다. 그는 클라디우스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네로의 고문으로 54-62년 로마제국 전체를 치리했다.

네로는 막강해진 세네카를 시기했고, 그는 65년 자살을 명령받고 죽는다.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고하면서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도덕적 편지들’이란 124편의 편지를 1962~64년에 기록한다.

그가 시실리 지방장관인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들이지만, 누구에게나 전하고 싶은 자신의 스토아 철학 내용이다. 세네카는 이 편지 모음집 16에서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킬리우스여! 내가 분명하게 말합니다. 누구도 ‘철학’ 즉 ‘현명에 대한 탐구’ 없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현명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심지어는 현명을 실천하기 위한 시도가 인생을 견딜만하게 만듭니다. 이 확신은 매일 묵상을 통해 강화되고 깊이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멋진 결심을 하는 것은 자신이 이미 서약한 결심을 준수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당신의 기질이 될 때까지, 당신의 끈기를 유지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세네카에게 철학은 학문분야나 자기개선을 위한 취미가 아니었다. 철학의 목적은 말이 아니라 행위였다. 철학은 심심함을 달래는 유희가 아니라, 성격과 기질의 틀을 만들고 삶의 질서를 잡고 자신의 행위를 제어하는 삶의 기술이다.

철학은 자신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내버려두는 용기이다. 하루라는 이리저리 흔들이는 바다에서 배의 키를 단단히 잡고 자신이 가야 할 항로로 의연하게 하는 용기다. 철학으로 장착하지 않는 배는 언제 좌초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걱정으로 불안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철학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내 그것을 실행하는 현명함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습관과 인격이 되도록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나는 오늘 철학을 생각하고 말하는데 그치는가? 아니면 철학을 실천해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로 항해하고 있는가?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가? 아니면 그 결심을 지키고 내 기질로 만들기 위해서 연습하는가?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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