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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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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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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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맞아 ‘도시’와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루는 글을 당분간 연재하고자 한다. 도시의 삶은 그저 우리에게 대안 없이 주어진 숙명일까. 아니면 우리가 소망할만한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특히 도시재생 시대를 맞닥뜨린 시민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할 질문이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은 도시와 자연의 관계이다.

산속이나 강변 깊숙이 들어가서 홀로 살아가는 일종의 ‘은둔자’들의 삶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의외로 이를 즐겨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중년층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직장과 사회, 때로는 가족까지, 체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대리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인기 요인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사람은 어디에 살든 누구든 간에 자연환경과의 최소한의 접촉이 필요하다. 도시인들은 그래서 자연과 가깝고, 자연과 친화하는 삶을 항상 꿈꾸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 휴가를 내고 비용을 들이면서라도 산에 오르고 바닷가를 찾곤 한다. 매일 매일이 캠핑과 같은 자연인들의 삶이 한편 부러워 보일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방송에 나타난 자연인들의 삶이 과연 ‘자연친화적’인 것일까? 한번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자연 속에 사는 것‘과 정말 ’자연친화적인 것’은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자연인들의 생활을 찬찬히 뜯어보면 아리송한 부분이 많다. 방송을 보면 전기, 가스 등 도시에서 생산된 물자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통신용 안테나가 화면에 잡히기도 한다. 자연인이라고 해서 도시적 편의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주거는 자연 속에 ‘자신만의 도시’를 만든 것에 가깝다. 자연의 순환과 합일된 생활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연 속에 작은 ‘도시문명’을 구현한 것일 뿐이다.

자연인의 생활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 자연친화적인 생활의 모델은 결코 아니다. 한번 이런 가정을 해 보자. 3000명 정도가 사는 중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 면적으로는 약 1만여 평 정도가 될 것이다. 어느 날 단지 주민들이 자연인들의 삶에 너무나 공감한 나머지, 모두 ‘나는 자연인이다’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가까운 내연산을 목적지로 정해 하나둘씩 산속으로 거처를 옮기기 시작한다. 산의 기슭과 골짜기 곳곳에 들어가 통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잔가지를 모아 불을 때고 나물을 캐서 식량을 조달하고 계곡의 맑은 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다시는 도시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3000명의 자연인은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자연인으로 숲속에 살아가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아파트 단지의 몇 백 배 면적이 필요하다. 수백만 평의 산지가 필요하다보니 내연산 군립공원 전체로도 부족한 지경이다. 면적도 면적이지만, 산속의 자원들은 과연 지속가능할까? 가을철에 도토리만 주워 와도 숲속의 동물이 굶주린다고 한다. 3,000명이 아무리 검소하게 생활한다 해도 숲속의 자원들이 메마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요점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자연을 위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많은 자원 소비를 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더욱 그렇다.

자연인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자연인이 오히려 자연에 더 부담을 주는 존재이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가장 산을 많이 파괴하는 사람이라는 역설과도 통한다. 그렇다면 자연에 가장 부담을 적게 주는, 진정한 자연인들은 누구일까?

바로 도시인들이다. 고층고밀의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인이야말로 진짜 자연인이다. 때로는 좁고 답답할지 몰라도 그래도 그대가 도시에 터를 두고 있음으로 인해 자연과 그 속에 깃들인 만물은 비로소 숨 돌릴 틈을 찾는다. 그래서 도시 속에서 검소한 삶을 사는 당신,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당신,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하는 당신이야말로 자연인이다. 지구온난화에 반신반의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고 믿는 당신, 사무실 책상에 놓은 화분 속에서도 자연을 꿈꿀 수 있는 당신이 바로 환경애호가이다.

그러기에 도시는 결코 자연을 파괴하는 도구가 아니다. 도시인들에게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잘 계획된 도시는 자연을 구하는 구조선과 같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폐기물을 줄이는 건전한 도시체계는 어떤 환경운동보다도 효과적인 자연보호책이다. 가장 ‘도시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도시적인 삶을 사는 그대, 그대가 바로 오늘날의 진정한 자연인이다’ 라고 말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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