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와 시베리아의 체코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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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와 시베리아의 체코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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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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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은 유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한다. 대중성이 높고 서사 구조가 탄탄한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흥행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설 원작의 영화가 실망을 안기는 경우가 더 많다.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시인·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닥터 지바고는 공산체제에서 출판이 허용되지 않자 1957년 이탈리아에서 세상 빛을 봤다.

이 소설로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그러자 러시아 작가 동맹은 이 소설이 사회주의 혁명에 반한다는 이유로 작가를 공개 비판했고, 부담을 느낀 파스테르나크는 결국 수상을 거부한다.

이 소설은 의사이자 시인인 유리 지바고가 주인공이다. 시대 배경은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 전후의 러시아. 공산혁명의 격류 속에서 가족과 사랑을 잃고 불행하게 생을 마치는 유리 지바고의 삶을 다뤘다.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위대한 영화

‘닥터 지바고’는 1965년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마 샤리프, 줄리 크리스티, 제랄딘 채플린 등이 출연했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영화인들 사이에서 원작 소설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감독 겸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극찬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스필버그는 친분이 있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영화 ‘닥터 지바고’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를 설명했다.

내가 ‘닥터 지바고’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 서울 명동 중앙극장에서였다. 볼세비키 혁명과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지바고의 안타까운 러브스토리, 라라의 테마송, 눈 덮인 광활한 평원만이 뇌리에 남았다.

그 뒤로 ‘닥터 지바고’를 네다섯 번은 더 보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로운 게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닥터 지바고’를 다시 보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스필버그의 평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그’ 역사적 사실이 과연 어떻게 다루어져 있을까 궁금해서였다.

볼셰비키당에 집을 강제로 징발당하고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지바고와 토냐. 시베리아는 아직 적군(赤軍)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 백군(白軍)은 시베리아 곳곳에서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 소설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러시아 내전사(內戰史)라고도 할 수 있다.

라라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지바고는 좌익 파르티잔들에 의해 납치된다. 파르티잔들은 ‘의료노동자로 강제 동원된다’고 설명한다. 부상병을 치료할 의사가 필요했던 파르티잔들은 지바고를 2년 넘게 억류한다.

집으로 가게 해달라는 말에, 파르티잔 지도자는 “전선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며 “외국 군대의 지원을 받는 군(軍)이 있는 곳이 우리의 전선이다”라고 말한다.

‘외국 군대’는 무엇을 말하나? 소설 닥터 지바고 2권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간섭군(軍)’ ‘러시아 부내도 아닌 미지의 부대가 바르이키노를 습격했다’ ‘어떤 수수께끼 같은 민족이 바르이키노를 습격했다는 소문’ 등의 표현이 보인다.

적군과 백군의 내전 상황에서 외국 군대가 개입했다는 이야기다. 외국 군대는 체코슬로바키아 망명군대(이하 체코군)를 말한다. 체코군이 지원한 군은 볼셰비키혁명에 반대한 백군이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폭발한다. 도대체 왜 체코군은 시베리아 한복판에 들어가 있으며, 왜 거기서 백군을 지원하게 되었을까.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식민지였다. 독일·오스만투르크와 동맹을 맺은 오스트리아는 동쪽에서는 러시아, 서쪽에서는 프랑스와 각각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맞서는 동부 전선 방어는 체코군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동부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던 체코군은 얼마후 같은 슬라브 민족인 러시아와 싸우는 것을 포기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1916년 체코 망명군대가 창설되었다. 6만명 규모의 체코군은 연합국(영국·프랑스)편인 러시아군에 배속되어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독일과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1917년 10월 볼셰비키 공산혁명이 발발하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게 된다.

제정러시아가 붕괴되자 체코군은 하루아침에 무소속 군대로 전락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의 체코 망명정부는 체코군을 프랑스군에 배속시킨다는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서부 전선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최단 루트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 군대에 합류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 길은 볼셰비키의 심장부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체코군을 태운 열차가 시베리아 철로를 횡단하는 모습. 주한체코대사관 제공
체코 망명軍, 볼셰비키와 싸우다

체코군은 시베리아를 횡단해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톡에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레닌의 볼셰비키 정권은 이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지만 체코군은 이를 거부하며 극동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체코군은 볼셰비키에 저항하는 백군을 지원하며 적군과 전투를 벌인다. ‘닥터 지바고’에서 적군과 전투를 벌이는 ‘외국군’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배경이다.

체코군은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조선인 두 명을 만난다. 임시정부로부터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해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라는 특명을 받은 특사들이었다. 이들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다 볼세비키로 오인당하여 백군에 체포되지만 체코 장군의 배려로 두 번씩이나 풀려나 천신만고 끝에 파리에 도착한다.

체코군은 1918년 4월부터 1920년까지 블라디보스톡에 순차적으로 도착한다. 그러는 사이 1918년 10월, 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한다. 체코군은 이동 중에도 신문을 발행해 국제정세를 보도했다. 이 신문에 조선의 3·1운동도 몇 차례 보도되었다.

1920년 2월, 소비에트 정권과 체코군 사이에 휴전이 조인되었다.

블라디보스톡 항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던 체코군은 일본의 핍박을 받던 조선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는다.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체코군의 화기(火器)가 성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다. 독립군은 러시아도 이긴 일본 정규군과 대적하려면 무엇보다 성능 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했다.

체코군은 한편으로는 귀국 경비도 마련해야 했다. 이 지점에서 체코군과 북로군정서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체코군은 조선 독립군에 무기를 헐값에 넘기기로 한다. 양측의 무기 거래는 일본의 눈을 피해 심야에 숲속에서 조선인 230명이 동원되어 극비리에 이뤄졌다.

북로군정서는 마침내 체코제(製) 무기로 완전 무장을 했다. 북로군정서의 지도자 이범석은 회고록에서 체코군이 독립군에 무기를 판매하기로 한 것은 같은 피압박민족에 대한 연민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체코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다 끝난 상태다. ‘러시아의 체코군대와 한국독립운동’ ‘한국독립투사에 들어간 체코무기’ 등의 제목으로 말이다.

국내에서는 신용하·박용석·이기백이 연구논문에서 이를 밝혔다. 주간조선 2010년 2월23일 자(2094호)는 체코 정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단독 보도했다.

1920년 청산리전투는 독립운동사에서 빛나는 승리로 기록된다. 김좌진 이범석 홍범도 안정근이 이끈 청산리 전투는 체코제(製) 무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체코군이 시베리아를 횡단해 극동으로 오지 않았으면 그들은 독립군과 조우하지 못했을 것이다.

겨울은 춥고 눈이 내려야 겨울이다. 눈이 너무 내리지 않아 겨울이 맞는가 싶은 요즘이다. 설경(雪景)이 배경이 된다는 면에서 ‘닥터 지바고’는 ‘러브 레터’와 함께 한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다. 스필버그가 극찬한 닥터 지바고를 영화와 소설로 다시 보고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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