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적 ‘정치세습’ 절대 안 된다
  • 모용복기자
봉건적 ‘정치세습’ 절대 안 된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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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사회의 폐단인 세습제도
현대 들어 능력 위주로 변화
금수저 정치인 日 아베 총리
정치세습으로 총리까지 올라
폐쇄적인 정치세습의 부작용
문 의장의 아들 4월 총선서
아버지 지역구에 출마하려다
불공정 논란에 불 지핀 꼴

봉건사회의 경직성을 규정짓는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가 세습(世襲)이다. 우리말로 ‘대물림’ ‘대이음’을 뜻한다. 세습의 종류로는 신분, 재산, 직업, 기예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신분의 세습이 봉건사회를 경화(硬化)시킨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신분제도는 신분을 대물림하는 한편 신분 상호간의 이동을 가로막아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기능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지배계급의 학정과 부패 등 온갖 폐단을 양산해 민초들의 원성과 민란(民亂)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현대 들어 능력위주의 사회로 변모하면서 세습은 재산상속에만 그 형태가 남아 있을 뿐 신분이나 직업 등에 대한 세습은 더 이상 제도가 아닌 능력이나 자발성에 의해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봉건사회의 병폐인 세습(정치)을 답습하고 있는 국가들이 더러 있으니 바로 이웃국가 일본이 그 중 하나다.

일본 언론인 아오키 오사무가 쓴 ‘아베 삼대’는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정체를 파헤친 저서로서, 오늘날 ‘괴물’ 아베를 탄생시킨 세습의 폐단을 가족사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 즉 무능력한 사람이 세습을 통해 ‘금수저 정치인’이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후 일본 정계의 거물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다. 그의 정치적 식견과 사고는 외조부의 영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가 총리가 된 이후 공식석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조부를 엄청 내세우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아베의 외조부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친부와 친조부에 더 주목하고 있다.

조부 아베 간은 전쟁 중 중의원을 지낸 인물로서 평화주의자였다. 당시 군국주의로 치닫는 도조 내각에 반기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밝은 안목을 지녔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 역시 비록 노부스케의 사위였지만 균형잡힌 감각을 지닌 온건보수 정치가였다.

특히 그는 재일한국인(자이니치)과도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그의 정치적 기반 확립에 자이니치 사회가 큰 기여를 할 만큼 서로 신뢰와 교분이 깊었다. 아베 신타로가 외상을 지낼 당시 한·일 관계가 원만했음은 그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이었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그런데 그 아들인 아베 신조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노골적으로 재일한국인을 적대시할 뿐만 아니라 대립과 편견까지 조장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 관계가 최악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럼 어째서 아베 신조는 직계인 조부·부친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저자는 가장 큰 원인으로 ‘세습정치’를 지목하고 있다. 자수성가형인 선대(先代)와 달리 아베 신조는 전형적인 금수저 정치인이다. 평범하기 그지없고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명문가 도련님으로 자란 신조는 입시의 고통이나 취업의 좌절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정치 입문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를 시작해 별 어려움 없이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문제는 텅 빈 존재인 아베 신조가 정치 입문 후 극우세력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정치적인 식견이나 소신이 옅었던 그가 점차 극우의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집행 직전까지 갔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절대적인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아베 신조가 헌법을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노부스케가 이미 1940년대에 시도하려 했던 것의 답습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조가 모범으로 삼은 외조부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원인이 일본의 고질적 병폐인 정치세습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은 정치세습의 천국이다. 현재 국회의원 중 3분의 1이 선대의 지역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당선된 세습의원들이다. 선대가 시간과 돈을 들여 잘 닦아놓은 텃밭에서 출마하는 자손들은 대부분 별 어려움 없이 당선된다. 이는 가문이나 가족적 기반이 없는 정치신인들의 정계진출을 가로막아 정치를 경직화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일본사회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폐단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은 정치에서만큼은 아직도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와 같은 괴물 정치인의 탄생이 가능케 한 배경에는 바로 이와 같이 여과장치를 상실한 일본의 정치세습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 정치사에서는 세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를 이어 ‘금배지’를 다는 경우야 더러 있지만 이는 세습과는 전혀 무관하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자식이 국회의원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비록 지금 우리 정치가 이념으로 양분돼 심각한 갈등양상을 빚고 있지만 그래도 일본과 같은 폐쇄적인 정치구조는 아니다. 정치신인들은 의지와 여건만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정계에 진출할 수 있으며 뜻을 펼칠 수도 있다. 우리 정치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문화의 시계를, 그것도 단박에 수 십 년 이상이나 되돌리게 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국가의전 서열 2위인 여당 출신 국회의장의 일이고 보니 더욱 기가 막힌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씨가 4월 총선에 출마하려다 뜻을 접었다. ‘아버지의 길을 걷겠다며’며 문 의장 지역구에 예비후보 등록한 지 일주일 만에 자진사퇴한 것이다. 국회의장 아들이 정치를 하는 게 하등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 큰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열린 사회다. 문제는 그가 출사표를 던지고 등판을 하려고 한 곳이 6선(選)인 아버지가 갈고닦아 놓은 텃밭이라는 데 있다.

문 의장이 불출마하기로 한 이 지역구는 현재 민주당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만약 이곳에 아들 문 씨가 출마를 하면 당내 경쟁자가 없어 무혈입성으로 공천을 받을 게 분명하다. ‘공천세습’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또한 전략공천을 받아 선거에 나오게 되면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후광으로 금배지를 다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르게 되는 불공정한 선거에서 능력 있는 인물의 등장과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괴물 정치인’ 아베 신조를 만들어낸 일본의 정치문화가 그러하듯.

지난해 조국사태로 대한민국 전역이 한 동안 ‘공정성’ 논란으로 심각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제 채 반 년도 되지 않아 정치 선진화를 가장 앞에서 이끌어야 할 국회 수장인 정치 지도자가 ‘정치 대물림’으로 인해 불공정 시비를 불러일으킨 것은 민심은 안중에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조국에 불 난 민심이 좀 사그라지는가 싶더니 또다시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다.

이번 4월 총선의 가장 큰 변화는 선거연령의 하향이다. 만 18세 이상의 고3 학생들이 투표소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여야는 이들 ‘질풍노도(疾風怒濤)’ 표를 얻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총력 경주에 나섰다. 이러한 때에 여당 정치 지도자인 국회의장의 정치세습 논란은 여권에 치명상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그토록 원해서 선거연령을 낮춰놓고 오히려 젊은이들을 등 돌리게 하는 우매(愚妹)함의 극치다. 불공정에 치를 떠는 것이 요즘 ‘젊은 피’들이고 보면 이는 분명 여권에 악재다. 비록 따가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일주일 만에 출마 철회를 한 것은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로 보인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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