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에게 편지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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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에게 편지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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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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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영화에서처럼’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신청곡

흐트러질까봐, 깨질까봐, 주저앉을까봐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되는 사람이 있다. 한 구절부터, 아니 한 단어, 아니다 그보다 먼저 내쉬는 여린 숨결에서, 아니 들숨에서, 아니, 아니, 그보다 더 먼저다, 곡의 세기로, 곡의 시작으로, 곡의 분위기로, 제목만으로, 그 곡을 듣겠다고 결심하는 데에서부터, 그저 당신의 이름만으로 나를 머나먼 곳으로 데려가 버리는 사람. 어느 밤이고 찾아가 노래를 청하고 싶은 사람. 불러주지 않아도 이미 들은 것처럼 귓가에 익숙한 사람. 하지만 다시 들어도 늘 새로운 사람.

나는 노래라는 행위가 무엇인지 당신을 통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며 변화할 수 있는 무엇이며, 때론 별빛처럼 빛나거나 돌연 감은 눈처럼 컴컴해지거나, 아무렇지도 않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 있는 것이라 배우곤 했다. 내게 울어도 좋다고 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는데, 당신은 이미 내 등을 토닥이거나, 내 앞에서 먼저 울고 있었다.

TV에서 만난 당신은 무대에 올라온 가수를 사려 깊이 소개했고, 호탕하게 웃었으며, 끝끝내 노래하며 울었다. 그런 당신은 점차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라디오에서, CD에서, LP에서 목소리로 남아 거기에 큰 슬픔이 있었음을 기별했다. 어느 순간에는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이라고 지그시 알려주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은 가진 모든 것으로 노래를 한다. 눈으로, 입술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목을 조이며 카랑카랑 내지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몸짓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나를 데려가 달라고. 당신이 닿은 그 마음의 곁으로 나도 가보고 싶다고. 한동안 나는 그러지 못해 허무했고 그것이 비단 당신에게서만 오는 쓸쓸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유일하지 않기에 당신은 더욱 특별했다.

이별을 경험하고, 또 이별을 하고, 아, 이별을 하다 이 생은 끝나겠구나 생각하던 즈음 나는 한 방송국의 리포터가 되어 혼자서는 가보기 힘든 곳들을 여행하게 되었다. 제작진은 내가 어민들을 만나고, 포구를 거닐고, 대를 오르며, 정처 없이 떠도는 모든 장면을 담으려 했다. 끝끝내 도달한 한적한 갯가에서 통기타와 노래로 내 마음을(아마 청춘의 마음을) 표현하라 요구하기에 나는 당신의 노래가 문득 생각이 났다.

당신 외에 누구도 그 곡을 진지하게 부를 순 없을 것이다.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었고, 카메라 뒤는 연출가와 작가와 보조 작가가 함께 서 있었다. 사방은 온통 어둠이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어느 날 문득 그 어둠이 내게 안겨준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생각해보곤 한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을 다하지 못했고 청춘의 노래인양 당신의 감정을 따라하려 애쓰며 그 곡을 불렀는데, 이상하게도 정말 흔들려버린 것이다. 곡 자체가 그 밤과 바람과 나를 압도한 것이다. 당신도 그랬었나요.

-처음 느낌 그대로

당신을 보고 자란 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당신을 듣는 날에는 늘 조금 어려운 기분이 든다. 무엇에 대해 어려운지 모르지만 그저 쉽지는 않다고 나는 느낀다. 그렇게 당신은 보다 심연으로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위대한 보컬리스트라거나 아름다운 영혼이라거나 하는 수식과 당신은 정확하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오래도록 견뎌온 사람.

하고픈 말은 많았는데 당신을 다시 듣고 있자니 손가락이 느려지고, 눈꺼풀이 흐려진다. 눈물을 감추려 눈을 감을 것이다. 노래는 끝이 나도 노래가 시작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이름만이 남아, 아니 이름도 지워지고 당신의 이미지도 목소리도 사랑도 슬픔도 지워지고 단 하나의 상(想)이 남아, 이미 나는 당신이 무척 그립다. 오성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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