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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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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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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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을 읽는 중이다.

보통 우리가 어떤 시인의 시(詩)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배경에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한용운, 이육사, 서정주, 윤동주, 박목월, 유치환, 김광균 같은 시인이 다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백석을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없는 세대다. 백석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금제 시인’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그는 고향을 떠나지 못하다가 북한땅이 붉게 물들면서 발도 묶이고, 시도 묶였다.

그는 서울에서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하던 1936년 평생에 딱 한 번 시집을 출간했다. ‘사슴’이다. 이 시집에는 ‘여우난곬족’ ‘정주성’ ‘모닥불’ 등 33편의 시가 실려 있다.

‘사슴’은 한마디로 말하면 고향 찬가다. 그것도 그냥 찬가가 아닌, 평안도 사투리를 그대로 살린 고향 예찬이다. 평안도 방언으로 인해 이 시를 처음 읽으려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까끌거린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그의 시어에는 토착성과 함께 거친 야성(野性)이 꿈틀거린다. 그가 아니었으면 누가 평북 정주를 이토록 질박하게 기억할 것인가.

서울아산병원, 아산정책연구원….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아산’(峨山)은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아호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의 ‘아산’에서 따왔다.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 땅에 대한 간절함이 아산을 호로 태어나게 했다.

고향을 빛내는 것은 대체로 이향(離鄕)한 출향인인 경우가 많다. 미당 서정주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고향집으로 가는 꼬불꼬불 고갯길을 잊지 못해 시집을 ‘질마재 신화’로 이름 지었다. 미당 시작(詩作) 인생의 절반은 고향 예찬이다.

어릴 적 고향마을에서 새겨진 서정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이미지로 조형해냈을 뿐이다. 민음사의 아동출판 브랜드인 ‘비룡소’는 창업자 박맹호의 고향인 충북 보은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따왔다. 소년 박맹호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멱을 감던 그 연못이다.

세인트 패트릭 축일과 ‘대니 보이’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저장된 공간이 고향이다. 한밤중에 야반도주한 사람에게도, 고향은 꿈에서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모여 세운 나라다. 유럽 국가 중에서 미국 이민자를 가장 적게 보낸 나라는 어디일까.

프랑스다. 유럽에서 모든 게 풍족한 가장 축복받은 땅이 프랑스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을 놔두고 말 다르고 물 선 이역만리로 이민 갈 이유가 있을까. 영국과 독일이 오랜 세월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점령한 것은 역설적으로 프랑스가 워낙 기후가 좋고 비옥한 땅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에 가장 많은 이민자를 배출한 나라는 어디일까? 아일랜드다. 대기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또 영국의 모진 핍박을 피해 그들은 춥고 척박한 고향땅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시 디아스포라(Irish Diaspora)다. 이들은 북미 대륙 전역과 세계 곳곳에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했다. 미국에만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이 4000만명 이상이 산다.

매년 3월17일 미국과 캐나다의 대도시에서 열리는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 Day) 축제는 정말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패트릭을 기념하는 이 날은, 눈물을 훔치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일랜드 이민 후손들이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기억하며 연대감을 강화하는 날이다. 뿌리를 기억하는 날이다.

아일랜드 포크송 ‘대니보이’(Danny Boy). 아일랜드 후손들은 언제나 이 노래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힌다. 한국인의 ‘아리랑’처럼 멜로디만 흘러나오면 순식간에 감상에 젖어드는 노래가 대니보이다. 아일랜드계 손님 출입이 많은 미국 피아노 바의 뮤지션들은 반드시 레퍼토리에 대니보이를 넣는다. 그러면 십중팔구 아일랜드계 손님들로부터 팁이 들어온다.

독일 라이프치히 중심가에는 ‘아우어바흐 켈러’이 있다. 1525년에 문을 연 이 식당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면서 명성을 더했다. 독일 10대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이 식당을 창업한 사람은 성공한 의사였다. 의사는 식당을 열면서 이름을 놓고 고민하다 ‘Auerbach’라고 정했다. 의사는 바이에른주의 고향 이름을 따서 옥호(屋號)를 지었다.

일리야 레핀의 향수(鄕愁)

어느 나라나 시골 출신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넓은 곳에서 많은 기회를 접하고,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스승들을 만나야만 사람은 점점 성장하게 된다. 다양한 문물을 접하고 자극을 받으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마침내 재능이 꽃을 피운다.

1844년 우크라이나 작은 마을 추구예프(Chugujev)에서 농노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은 열여덟 살 때 미술을 공부하러 제정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상경한다. 덜컹거리는 역마차를 갈아타고 장장 한 달이 걸리는 멀고 먼 길. 호주머니에는 달랑 15루블(약 282원)이 전부였다.

미술아카데미 학생이던 그는 1873년 ‘볼가강의 뱃사람’을 그려 일약 주목받는 화가가 된다. 일리야 레핀(1844~1930)이다. 이후 레핀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기수(旗手)로 불리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자포르쥐에 카자크들’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과 같은 불멸의 작품을 남긴다.

레핀은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자신을 화가로 키워준 제2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날 수는 없었다. 화가로 성공한 뒤 그는 핀란드만 근처에 숲을 사서 집을 짓는다. 그 집을 ‘페트나이’라고 명명했다.

페트나이는 러시아어로 ‘고향집’. 레핀은 집을 둘러싼 1만3000여㎡(약 4000평) 숲을 고향 마을처럼 꾸며놓았다. 언덕도 고향의 언덕처럼 꾸며 ‘추구예프의 언덕’으로 명명했다. 연못도 어릴 적 물수제비 뜨던 그 연못이었다.

작가, 화가, 작곡가가 정상에 올라가 30년 이상 정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영감과 창의성이 샘물처럼 끝없이 샘솟아야 가능한 일이다. 레핀은 40년간 최상의 작품을 그려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레핀의 ‘고향집’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중심가에서 47㎞나 떨어져 있다. 우리 기준으론 멀지만 땅덩어리가 광대한 러시아인 기준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다.

그의 고향집에 가서, 고향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숲속을 거닐면서 나는 깨달았다. 마르지 않는 영감과 창의성의 원천(源泉)을. 노년에도 동심(童心)을 잃지 않았던 까닭을. 문을 열고 한 걸음만 내디디면 숲의 정령들이 호르르르 바람결에 떠다닌다. 레핀은 그 숲에서 세헤라자드 같은 아내와 함께 살았다.

언제든 고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다시 뿌리를 찾는 거대한 물길이 뭍에서 이어지고 있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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