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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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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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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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감

인류에게 도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안전’의 확보라 할 수 있다. 성경 창세기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두려움 속에 방황하다가 최초로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협적인 환경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성벽 건설이 고대 도시의 출발점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류가 민족과 나라로 나뉘어 싸우는 동안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더 높고 더 단단해져 갔다. 성벽, 성곽 등 방어 관련 시설을 빼고는 고대유적을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도시는 더 이상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연결되고 열려있는 도시가 더 흥왕하다. 방어는 더 이상 도시의 존재 이유가 아닌 것만 같다. 하지만 현대 도시에서도 위협과 침입에 대한 방어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물리적인 침략이 아닌, 전염병과 같은 보이지 않지만 유해한 요인에 대한 방어로 바뀐 것이다.

인류가 전염병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 전염병은 막연히 ‘역병’으로 불리며, 귀신처럼 다가와 목숨을 앗아가는 미지의 위협이었다. 가장 오래된 유럽의 기록을 보면 기원전 430년 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항구를 통해 들어온 이름 모를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당시 인구의 1/4 까지 죽어갔다고 한다. 기원후 700년경에는 동서양의 관문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에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도 만 명 이상이 죽어가는 비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도 유럽에는 황열병, 콜레라, 흑사병 등이 창궐하면서 당시 문명 수준까지도 위축시키곤 했다. 찬란한 유럽문명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전염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역병을 막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80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역병 확산을 막기 위해 최초의 그린벨트를 지정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효과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알 수 없이 찾아온 역병이 역시 알 수 없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역병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근대 도시화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1854년 런던의 의사 존 스노우는 도시를 전염병에서 구한 인물 중 하나이다. 역학 개념조차 희박하던 때에 그는 콜레라 환자들의 거처가 한 우물 근처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이른바 수인성 전염병의 본질을 찾아낸 것이다. 이에 바턴을 이어받은 것은 엔지니어와 도시개발가들이었다. 오염된 물과 깨끗한 물의 분리 없이는 도시의 건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물을 두 갈래로 분리하는 거대한 작업을 시작한다. 지금은 그저 ‘상하수도’라 부르는 아주 일상적인 시스템이지만, 이를 최초로 구현해가는 작업은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결과는 놀라왔다. 상하수도 시스템 구축만으로도 도시인의 평균수명이 거의 두 배에 가깝게 늘어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랬다. 구한말 한양 시민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5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시기에 상하수도가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평균수명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시 위생시설이 건강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도시 위생시스템은 기적과도 같다. 밸브만 돌리면 언제라도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배출되는 분변은 버튼 하나 만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병원균이 활동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과거 제국의 황제들도 누리지 못한 호사랄까. 높은 성벽으로도 못 막던 역병을 차단해 준 현대의 방어수단인 것이다. 역병을 두려워 않고 도시를 개방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시 위생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위협이 20세기 후반 이후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 에이즈, 에볼라, 신종플루 등 접촉으로 감염되는 강력한 바이러스들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빠른 교류는 세계화 시대의 덕목이지만 치명적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파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불과 두 달 만에 전 세계로 퍼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항이 제한되고 도심은 비어가며 거리의 활기도 사라지고 있다. 도시를 차단하기 시작한 중국의 상황을 보면서 다시금 이전의 성벽 시대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든다. 긴 시련의 시기로 돌입하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 스쳐가는 불행일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도시와 전염병의 대결이 새로운 라운드로 돌입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슬프게도, 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경고했던 중국의 한 의사가 숨졌다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의 시간에도 그와 같은 선구자가 있었음을,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감사할 따름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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