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상대방 입장에 서보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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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란 상대방 입장에 서보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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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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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이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했고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반복했다.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더 이기적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명예, 권력, 그리고 부가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부모와 학교는 그런 것들이 편함과 행복을 가져다줄 마술지팡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문명사회가 아니라 야만사회다.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인 인간은 짐승보다 더 잔인하다. 짐승은 자신의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음식을 쳐다보지 않으나, 그런 인간은 더 이상 소화할 수 없는 양의 부과 권력을 축적해, 자신도 어떻게 용신할 수 없는 초고도 비만환자로 전락한다.

인류는 소위 힘을 가진 자들이 법을 만들어, 자신들이 우연히 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를 억압했다.

그런 인류에게 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다수가 다스리는’ 제도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정신이다.

다수는 개인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대중의 힘을 얻어, 개인으로서는 감히 하지 못할 폭력을 악의적으로 행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가 공정하다고 자화자찬한다.

개인은 양심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도덕적으로 잘못된 언행을 후회하지만,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 그들에겐 다수가 원하는 것이 ‘정의’(正義)란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다수의 폭력을 가장한 불의(不義)이다. 20세기에 등장한 흐루쇼프, 무솔리니, 히틀러,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은 민주주의의 약점인 다수결 폭력을 이용해 독재자가 됐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선각자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부유하고 웅장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自由)를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양심과 자유가 인간들이 만들 도시공동체의 운영, 즉 정치의 기반이라고 확신했다. 제정이나 왕정과는 전혀 다른 정치체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소노미아’(isonomia), 즉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이란 사상이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도시의 법을 준수하고 자신의 양심의 외침에 승복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이기적으로 야만적이기 때문에, 도시 안에서 거주하며 타인과 공존하고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인들은 ‘교육’을 그리스어로 ‘파이다이아’(paidaia)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걸음마 연습’이다.

사람들은 제대로 걷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걷지만, 실제로는 우습게 삐뚤어 걷는다.

인간의 삶에 핵심적인 숨쉬기, 먹기, 듣기, 말하기, 보기, 그리고 걷기와 같은 행위를 당연하게 여겨, 습관대로 움직인다.

교육이란 자신이 알게 모르게 교육받은 내용을 없애는 훈련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에듀케이션 이스 언-에듀케이션’(Education is Un-education)이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몸이 익힌 버릇, 대부분 유기해야할 나쁜 버릇을 제가하는 수고이다.

‘요가수트라’를 편집한 4세기 힌두학자 파탄잘리는 ‘삼매경’ 2절에서 “요가는 마음속에서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잡념을 제거하는 연습이다”라고 선언한다.

요가는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 말, 그리고 행위에 고삐를 채우는 연습이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觀察)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관객(觀客)이 돼야, 자신의 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에게 가장 엄한 관찰자와 충고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과정이 교육이다.

인류에게 관찰이라는 교육을 시작한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이고 다른 사람은 아테네의 찬란한 미래를 꿈꾼 약관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다.

기원전 472년 인류는 민주주의와 엔터테인먼트를 탄생시켰다. 민주시민들은 비극공연을 통해 자신을 성찰했다.

그해에 인류 최초의 비극공연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옆 원형극장에 올라갔다.

이 비극공연은 아테네에서 개최된 디오니소스 축제의 일환이었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춘분 때 6일 동안 거행되는 아테네 도시 의례다.

축제 첫날 포도주와 풍요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고향인 엘레우테라이에서 가져온 횃불을 들려오는 행사를 거행한다.

이 횃불은 비극 드라마 경연이 있는 6일 동안 활활 타오른다. 그러고 나면 멀리서 순례 여행 온 그리스인들과 동맹도시 시민들의 행렬이 있다.

그다음엔 그 전해 전투에서 죽은 전사자 아들들의 장엄한 열병식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 정신인 자신들의 최선을 무대에 올리는 ‘공정한 경쟁’ 축제를 즐길 참이다.

올림픽경기가 인간 신체의 최선을 확인하는 축제라면 디오니소스 축제는 인간 정신의 최선을 고양시키는 축제다.

이들은 호메로스 시들을 암송하는 경연과 피리와 리라연주를 곁들인 디티람보스 경연을 벌인다.

이 축제의 절정은 비극경연대회다. 비극경연은 경쟁이 가장 심했다. 극작가들은 그 전해 가을에 ‘트리올로지’라고 알려진 세편의 비극과 ‘사티로스극’ 한 편을 가지고 신청한다.

이 축제를 관장하는 아테네 도시 최고지도자인 ‘아르콘’(archon)은 세 명의 극작가를 선별한다.

극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무대에 상연될 수 있도록 후원을 받는다. 도시는 합창대, 합창대원 월급, 무대장치, 의상, 가면 등 일체의 비용을 지불한 사람을 지정한다.

아테네 귀족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은 ‘코레고스’(choregos)라고 불렸다. 비극경연 ‘페르시아인들’의 코레고스는 페리클레스였다. 그는 23세의 나이로 찬란한 아테네 문명을 꿈꾸고 있었다.

학자들은 ‘페르시아인들’을 살라미스 전쟁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다음 해인 기원전 471년 테미스토클레스가 도편제에 의해 아테네에서 10년 동안 추방된 것을 보면, 이 분석은 틀렸다.

혹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시작된 델로스 동맹에 대한 선전이라고 해석한다. 기원전 454년 델로스에 있던 동맹 자금을 아테네로 가져오면서, 파르테논신전과 아크로폴리스건축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작품에는 이런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해석보다, 더 큰 획기적인 가치가 숨어있다. 아이스킬로스와 페리클레스는 이 작품이 아테네 정신을 일깨우고, 그리스의 위대한 문명의 씨앗인 그 무엇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취시키려한다.

아테네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런 비극 관람을 통해 민주주의에 가장 필요한 가치인 경청, 배려, 그리고 용서를 배웠다.

교육이란 상대방 입장에 서보는 역지사지의 훈련이며, 경청, 배려, 그리고 용서라는 가치를 자신의 몸에 배도록 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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