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성벽서 통일신라시대 팔부중상 부조 발견
  • 나영조기자
경주읍성 성벽서 통일신라시대 팔부중상 부조 발견
  • 나영조기자
  • 승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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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축조 성벽 구조물서 석탑면석 3점 기단석으로 재사용 확인
경주읍성 치 기단석 모습. 사진=경주시 제공
경주읍성 중 조선시대에 축조한 방어용 구조물 기단부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쓴 팔부중상(八部衆像)이 발견됐다.

한국문화재재단과 경주시는 경주읍성 복원정비 사업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재사용되었음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불교에서 인간 이외 다양한 존재를 일컫는 집합적 용어인 팔부중은 천(天)ㆍ가루라(迦樓羅) / 용(龍)ㆍ야차(夜叉) / 건달바(乾?婆)ㆍ아수라(阿修羅) / 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喉羅伽)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을 통칭한다.

이번에 확인된 팔부중상은 긴나라·마후라가를 새긴 북쪽, 건달바·아수라를 표현한 남쪽, 용과 야차가 남은 동쪽 부분이다. 천과 가루라가 있는 서쪽 면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팔부중상 출토 지점은 성벽에 덧대어 만드는 구조물인 ‘치’(雉) 기단석 가장 아래쪽으로 기단 북쪽과 동쪽 모서리를 연결하는 형태로 면석을 놓았다.

치는 현재 기초석과 기단석만 남았고 기초석 범위는 동서와 남북 길이 모두 11m이며 기단석은 길이 10m, 너비 8m다. 기단에는 팔부중상뿐만 아니라 탑 부재와 건물 주춧돌 등이 사용됐다.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팔부중상이 부조된 석탑 및 탑재 중에서 동일한 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으나 조각 전체가 8세기대의 조각양상에 비해 정교하지 못한 편이고 천의 자락 날림이 부자연스럽고 손 모양도 변형된 점 등으로 미루어 9세기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문화재단 관계자는 “경주읍성은 고려시대에 처음 조성했지만 치성이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볼 때 팔부중상 석탑재가 성벽의 석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사상적 배경과 불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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