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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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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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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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조그만 식당 하나로 시작할 때 관심은 온통 ‘돈’이었다. 어떻게 해야 제 시간에 임대료를 내고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을까에만 집중했다. 때때로 돌아오는 부가세와 식재료비도 큰 고민거리였다. 왜 그런 지출은 눈 깜짝하면 돌아오던지.

매장이 늘고 식구가 늘면서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사람’이었다. 자영업자에게는 제대로 다 맞추기 빠듯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4대 보험 등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인사관리였다.

초창기에는 새벽녘 영업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 잠시 쉴라치면, 직원들로부터 전화가 폭주했다. 어디선가는 사고가 났고 어느 곳에선가는 회식자리 참석 요청이 이어졌다. 이런 주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다음 날 어느 매장에서 결근이나 퇴사, 사고가 줄을 잇곤 했다. 그 모든 것을 혼자 다 처리해야 했다.

중소기업이 되면 돈 걱정은 여전하더라도 사람 고민은 덜고 살 줄 알았다. 스스로 가게와 기업을 구분하는 기준을 사장이 매장에 달라붙어 있어야 하느냐로 삼을 정도였다.

기업이 되면 사장이 없어도 시스템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줄 줄 알았다. 대인관계나 인사관리도 별도의 관리나 인사팀에 맡겨두면 될 테니까. 나 자신의 경영 스타일도 그랬다. 매일매일 영업 활동인 관리는 다른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든지 하는 전략적 판단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꿈꾸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착각이었다. 두 가지 고민은 더 커졌고 새로운 것도 추가됐다. 이번에는 ‘정보’였다. 관리를 거의 전적으로 다른 임직원들에게 일임했다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파벌이 형성돼 인사는 불공정해졌다. 경제적 보상마저 불공평했다. 결국 뜻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과 헤어지는 극약처방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문제가 심각해졌다. 회사의 온갖 서류들을 빼돌려 경쟁자나 구원(舊怨)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일부 메뉴용으로 쓰려고 산 수입게 자료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간장게장용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몇몇 오프라인 매장의 어려움을 온라인으로 돌파해보려고 시도했던 간장게장 판매였지만 결과적으로 배송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서둘러 사과하고 큰 손실을 본 프로젝트였다. 이를 악용한 중상모략이었다. ‘내가 차지할 수 없다면 차라리 망해 버려라’는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식이었다. 회사 떠난 억울한 심정이야 헤아리지 못 하는 바 아니지만 기업 정보가 지속적으로 유출돼 악용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현직자 가운데 퇴직자를 돕는 사람들을 짐작이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거 없이 공격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퇴직 임직원들이 은연중에 협력자를 털어놓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여전히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회사에 머무르면서 해를 입히려는 부류들이었다.

흘러나가도 될 만한 낡은 서류를 하나 준비했다. 최신 수치가 빠진 낡은 오류 투성이 자료였다. 여기에 곳곳에 고의적인 오타를 남겼다. 그것은 일종의 지문처럼 유출원을 명백히 밝혀줄 터였다.

며칠 만에 주변에 흘러들어간 그 자료의 오타가 확인됐다. ‘빚’이라는 철자가 ‘빛’으로 오기된 문서였다(이런 식의 오타를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저주와 악담에 눈이 멀면 잡아낼 수가 없다).

고맙게도 자신들이 공격하려던 ‘빚 많은’ 사장은 졸지에 ‘빛 많은’ 사장으로 둔갑해 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정보 유출을 확인하는 방법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의 경험담과 시스템에서 한 수 슬쩍 배운 것일 뿐이다.

별 수 없이 정보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중소기업, 그것도 요즘 가장 어렵다는 식당 사장, 그중에서도 밑바닥이라는 ‘여자 식당 사장’으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저 돈과 사람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충분히 고달픈 자리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면 아귀다툼은 불가피하고 그걸 피하지 않아야 한다. 돈과 사람뿐만 아니라 정보에 대해서도 분명한 사실은 이기려 하지 않거나 이길 수 없는 사장에게는 셋 다 한 없이 가혹한 것이라는 점뿐이다. 이여영 (주)월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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