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할 때와 낙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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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할 때와 낙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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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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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연구원 시절에 여의도 개발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한 상업지역의 고층아파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가 핵심이었다. 지금은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부르지만 그때까지는 그런 개념도, 이를 제어할 정책 장치도 없던 시기였다. 연구진은 예측결과를 토대로 이런 변종을 그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동산 시장의 충격은 물론 전반적인 도시환경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한 개발자 측에서 연구팀을 고소해 버린 것이었다. 보고서의 비관적 예측 때문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막강한 자금력에 정치적 파워도 가진 사람들이라 연구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그 소송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공공정책 수립에 있어서는 비관적인 예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분야는 특성상 미래에 대한 예측을 자주하게 된다. 그리고 예측에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늘 포함된다. 비관적인 상황을 원해서가 아니다. 다수의 시민,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계획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낙관적 전망은 듣기에는 좋다. 하지만 미래를 다루는 계획가와 정책가의 덕목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 정책가, 리더들을 선호한다. 위험과 비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도 하지만, 있다고 해도 인기가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가 생각해봐야 한다. 번지르르한 말을 내세울 뿐, 실천도 실속도 없는 리더들, 그들의 장밋빛 공약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를 어디 하루 이틀 보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엄한 현실을, 다가올 위협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리더는 없고, 그런 리더를 뽑아줄 표심도 없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긴 호흡으로 보면, 비관적인 예측도 망설이지 않은 용감한 리더들의 이름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일본의 침략을 경고하며 십만 양병설을 말한 이율곡이 그렇고, 유럽의 평화가 풍전등화 상태임을 경고하다가 정계에서 쫓겨날 뻔했던 처칠이 그렇다. 진정한 리더라면 필요할 때 과감하게 비관적인 전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대중들이 듣기 싫어할 불편한 진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과연 리더는 낙관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비관적이어야 하는가. 이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낙관과 비관이 필요한 경우를 역사가 이미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상이 우리의 의지로 어쩔 수 없거나,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것이라면 우리는 비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외세나 환경적인 위험, 재난과 같은 대상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돌다리도 두들겨가라는 속담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우리의 행동과 의지에 속한 것이라면 비로소 우리는 낙관적일 수 있다. 리더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말해야 하고, 기대와 격려로 사람들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적과 아군의 경계를 녹여가며 공동체와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비관할 때와 낙관할 때를 구분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의 덕목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풍토에서 이런 덕목이 있는지 모르겠다. 비관할 때와 낙관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 같다. 우리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근거 없이 낙관적인 모습을 본다. 그런가 하면 내치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한 없이 비관적이다. 온 나라를 적군, 아군으로 구별하여 차별하고, 반대편은 전략과 술수의 대상으로 보는 문화가 정치권과 인터넷에 만연하다. 비관과 낙관의 대상이 오히려 뒤집어진 형국이다.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미지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낙관적 전망을 섣불리 내세운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모든 상황을 끌고 가야 했다. 정치적인 수사와 협상은 어디까지나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일 때나 유효하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같은 재난은 귀도 없고 감정도 없다. 우리의 낙관적 언설에, 희망적인 수사에 전혀 감동받지 않는다. 비관적으로 접근해야 할 가장 전형적인 대상인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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