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본고장 기계면의 지도자 성일조입니더
  • 경북도민일보
새마을운동 본고장 기계면의 지도자 성일조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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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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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기계면 떠난적 없어
취직 위해 잠깐 부산 갔지만
1년 후 돌아와 군복무 마쳐
새마을운동 본격화 되면서
미장 등 마을 집수리 담당
요즘엔 4륜 오토바이타고
순찰돌며 스트레스 해소
성일조 씨가 면사무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일조 씨 가족 사진.
성일조 씨가 집 앞 땔감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성일조의 포항이야기<22>

“내세울 것이라고는 벌거 없지만 그래도 새마을운동의 본고장 기계면의 새마을지도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 또래 70살 넘은 노인네들이랑은 다르게 저는 이곳 기계면 남계리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아버지 고향은 기계에서 멀지 않는 영천 자양면, 아버지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 기계면으로 옮겨와서 모든 가족들이 여기서 뿌리를 내렸다. 2남3녀의 맏이로 태어났지만 논 마지기도 없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보니 기북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학조(교) 갈 생각은 꿈도 못 꿨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가서 땔감(화목)을 만들어 장에 팔거나 논 다섯마지기로 근근이 가족들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친구들처럼 객지에 돈벌러 가고 싶어 대도시 부산에 가서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남자 장정들은 군에 갔다 오지 않으면 취직은 아예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입대 신체검사 받아놓고 갔던 부산에서는 막노동판에서 부로꾸(벽돌)도 찍고 질통을 한 1년 지고는 기계로 다시 돌아왔다. 군복무는 제1보충역 판정을 받아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가안1리 무기고 경계근무를 서며 방위를 마쳤다.

농사지을 땅과 토지가 그리 많지 않아 할아버지때부터 해오던 일, 산에서 나무를 해와서 장작을 패 내다파는 일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다고 해서 목수일, 미장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깔끔하게 잘 한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찾아주면서 젊은 시절 꽤 많은 일을 했다. 특히 당시 새마을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마을 집집마다 담장을 쌓고 부엌을 고치는 집수리 등 일이 많았다.

31살 때, 8살 아래인 이웃동네 처녀 이명자(63)가 노총각을 구제해 줬다. 마누라와 함께 1남2녀를 낳았는데 다 반듯하게 장성했다. 마누라는 지금도 옆동네 고시원에 가서 청소며 식당일 하며 한달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벌어와 당뇨로 몸이 불편한 내 대신 가장 노릇까지 해주니 참 고맙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불편해지고 어려운 점이 하나 둘 생기는 건 사실이다. 당뇨가 심해 인슐린주사도 자주 맞아야 해 안방 탁자위에는 인슐린 주사약이 수북하다. 또 노동일의 특성상 막걸리 한잔씩 하는 게 낙이었는데 그 마저도 몇 년 전 음주에 적발되고는 아예 몰고다니던 1t 트럭마저 팔아버렸다.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은 아직도 많다. 집앞 700평짜리 감나무 밭에 자주 나가는 것도 작은 행복이고 나의 애마인 160cc짜리 4륜 오토바이를 타고 40분거리의 기계면소재지까지 매일 한바퀴 순찰(?)돌고 오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의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쏠쏠한 행복은 외손자 외손녀들이 고사리손으로 적어 자주 보내주는 카드를 읽는 일과 가끔 주말이면 자식들이 내려와 삼겹살 파티를 하는 것이다. 손자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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