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재도약을 위한 발판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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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재도약을 위한 발판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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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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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본다. 그리고 머리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행복한 일이나 불행한 일이나, 나의 노력이나 실수이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재난이거나. 내가 이런 크고 작은 일들에 일희일비하면, 컴컴한 산속에서 나침반을 잃은 조난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탈무드에 등장하는 구절을 생각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이 문장의 해답은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 “모든 사건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자는 코로나19처럼 큰 사건으로부터 크게 깨닫는 자이며, 어리석은 자는 큰 사건을 두려워하고 움츠러드는 사람이다. 사건들은 우리를 좀 더 지혜롭게 만드는 스승이다.

히브리인들은 개인적인 일이나 역사적이 사건들을 신들의 가르침으로 여겼다. 히브리어 ‘다바르’(d?b?r)는 ‘사건’이라는 의미와 ‘신의 말씀; 계시’라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가 있다.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힌트이며 우리의 반응(反應)을 섬세하게 단련할 교육(敎育)이다. 교육이란, 자신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로부터, 어떻게 사는 것을 최선인지 알려주는 훈련이다.

교육이란 영단어 ‘에듀케이션’(education)이 그 심오한 의미를 잘 드러낸다. 교육받는 인간은 사건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바라본다. 그는 사건의 반응을 통해 자신도 알지 못했던 은근, 끈기, 지혜, 용기와 같은 가치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밖으로’(e-) 정교하게 꺼내 ‘인도’(ducation)한다.

교육의 커리큘럼 중 가장 중요한 과목은 ‘시선훈련’(視線)이다. 시선이 나의 강점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된다. 만일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감정적으로, 주관적으로, 근시안적으로 보고 어린아이처럼 반응한다면, 이 사태는 악화할 것이다.

우리가 이 재단 앞에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피우는 사람들과 부화뇌동(附和雷同)한다면, 기약할 수 없는 최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지금은 부처님이 단상에 올라 절호의 가르침을 설파하려는 찰나다. 지금은 이 사태가 우리 자신, 우리가 하는 일, 우리 공동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조용하고 침착하게 고민할 절호의 시간이다.

교육이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를 엄습하는 왜곡된 시선들을 제거하는 기술이며 훈련이다. 교육은 과거에는 잘 통했을 반응체계를 버리는 행위기 때문에 언제나 ‘반교육’이다.

‘에듀케이션 이즈 올웨이즈 언에듀케이션!’(Education is always Uneducation!) 그 기술과 훈련이란, 왜곡된 시선을 솎아내고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지표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닌 편견(偏見), 막연한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거가 없고 소용이 없는 ‘걱정’을 날려 보내는 용기다.

그러면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진리’(眞理)다. 진리는 동요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흥분하거나 두려워해도, 진리를 품은 자는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본다.

그것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진리’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해주는 단어는 히브리어 ‘에메트’(emet)다. 이 단어는 ‘믿다’를 의미하는 ‘아멘’(amen)이란 단어에서 파생됐다. 그 의미는 ‘자신이 간절히 믿고 있는 어떤 것’이란 뜻이다.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심사숙고 과정을 통해, 간절히 믿고 있는 하나를 발견하지 못할 때, 등장한다. 나는 무엇을 ‘간절히’ 믿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간절히 믿고 있는 ‘한 가지’, 진리를 가지고 있는가?

진리를 품은 자는 사건을 대하는 반응이 다르다. ‘반응’이란 영단어 ‘리스폰스’(response)는 ‘다시’를 의미하는 re와 ‘맹세하다; 서약하다; 물을 뿌리다’를 의미하는 ‘스폰데레’(spondere)라는 라틴어 동사의 합성어다.

로마인들은 제단에 물을 뿌리거나 자신의 몸에 물을 뿌리며 스스로에게 서약하는 의례를 행했다. 후에 그리스도교에서 이 물을 뿌리는 의례를 세례로 만들었다. 반응이란 과거의 습관대로 대처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래된 편견을 제거하고 새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말과 행동이다.

위기는 기회가 아닌 적이 없었다. 코로나19와 같은 엄청난 위기는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를 고양시킬 절호의 기회다. 우리 민족이 그래 왔던 것처럼, 이 거대한 위기를 우리 사회를 도약시킬 위대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나는 이 사태를 재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가?”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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