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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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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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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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각각 다른 사람이 맡는 이른바 분리모델이 부각되면서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그 모델 채택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SK가, 올해 삼성전자가 분리를 채택했는데 ‘베스트 프랙티스’를 선도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미국 상장회사의 약 20%, S&P500 기업의 거의 절반이 분리모델을 채택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해외 기업들이 CEO와 별도로 이사회 의장을 두는 경우는 대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첫째, 회사에 오너가 없기 때문에 두 지위가 분리된다. 오너가 없는 회사의 경우 이사회가 새 CEO를 영입한다. 사실 이 이유가 미국 대기업에서 분리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애플의 팀 쿡이 이사회 의장이 아닌 이유도 레빈슨 현 의장이 스티브 잡스 때부터 선임 사외이사였고 잡스 사후 팀 쿡의 CEO 발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오너가 있는 회사여도 피아트(FCA)의 마르키오네처럼 사외이사들 중에서 CEO가 발탁되는 경우 자동적으로 분리가 발생한다.

둘째, 회사에 문제가 있어 CEO에 대한 불신이 발생한 경우다. 월트 디즈니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는 2004년에 본인의 재선이 결정되는 주총을 앞두고 대다수 기관투자자들이 불신을 표명하자 이사회 의장직을 CEO와 분리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기업 경영에 가장 어두운 사외이사 전 상원의원 조지 미첼을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의장에 추대했다. 그러나 이는 꼼수로 평가받았다. 아무도 아이스너의 진정성을 믿지 않았고 아이스너는 22년간의 CEO 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이사직에서도 결국 퇴임했다.

셋째, 행동주의 주주들이 CEO의 힘을 약화시키려 시도하는 경우다. 후일의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CEO로 있던 2008년에 엑슨모빌에서는 주주들이 회사의 친환경 정책이 미온적이라고 생각했다. CEO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분리모델 도입을 추진했다. 기관투자자들과 록펠러 패밀리가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를 위한 주주제안을 회사에 제출했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39.5%의 찬성 밖에는 얻지 못해 부결되었다.

넷째,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를 영입하면서 오너가 잠시 후선으로 물러나는 경우다. 즉, 오너가 사외이사가 되는 경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당시 포드 CEO였던 헨리 포드의 증손자 빌 포드는 앨런 머랄리를 CEO로 영입하면서 이사회 의장으로 옮겼다. 포드는 정부의 구제금융을 마다하고 회사 전 자산을 담보로 제공, 대규모 차입을 감행했다. 머랄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빌 포드는 포드 패밀리를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다. 회사는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포드 모델은 일종의 공동경영 모델인데 아직도 유지된다.

다섯째, 오너가 애당초에 경영에 관심이 없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경우에 이사회 의장으로 참여한다. 여기서도 오너가 사외이사다. 경영평가와 그에 따른 인사권을 행사한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는 버핏이 은퇴하면 아들이 이사회 의장이 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오너가 사외이사로 참여해도 꼭 이사회 의장이 되지는 않는다. BMW의 오너 슈테판 크반트는 부의장이다. 폭스바겐처럼 특이하게 CEO직에 연령 제한을 두는 회사도 있다. 오너 피에히 전 회장은 65세에 CEO에서 의장으로 이동했었다.

여섯째, 두 회사가 합병하는 경우 양측의 수장이 CEO와 이사회 의장을 나누어 맡는 경우다. 대개 연장자가 이사회 의장이 된다. 아르셀로와 미탈이 2006년에 합병할 때 락시미 미탈은 자신이 인수 주체였지만 아르셀로의 회장을 이사회 의장에 올렸다. 그 은퇴 이후 미탈은 겸직을 유지하고 있다.

일곱째, 100% 분리인 독일의 경우다. 독일은 법률상 이사회가 복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감독위원회와 경영위원회는 서로 중복되지 못하므로 자동으로 분리가 된다.

CEO에 해당하는 경영위원회 위원장이 퇴임 후에 일정 기간 쉬었다가 감독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임러의 디터 제체 전 회장이 지금 쉬는 중인데 내년에 감독위원회 위원장, 즉, 이사회 의장이 된다.

두 지위를 분리하는 것은 이사회가 CEO를 견제하고 감독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같이 오너가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경우 두 지위를 분리하는 데 큰 의미는 없다. 오너 CEO에 대해 이사회가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오너 의장과 독자적인 존재감 없는 CEO는 사실상 분리하지 않은 것과 같고 오너 CEO와 이사회 소집과 진행 외에는 독립된 역할이 없는 의장도 사실상 분리하지 않은 것과 같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평가기관들과 일부 교과서에서 좋게 평가한다는 이유만으로 분리모델을 택할 것은 아니다. 분리와 기업가치의 상관관계에 대한 학술 논문들도 결론이 일치하지 않는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의 사업 내용과 소유구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논문도 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80% 이상이 분리모델이고 첨단 테크기업들은 30% 미만이 분리라는 자료도 있다. 특히 전환기에서 혁신과 신사업모델 추진에 집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분리모델 채택이 리더십에 불필요한 착시 현상만 발생시킬 수 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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