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거세게 거부하던 세계화였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달콤한 변화일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후 20여 년간, 이 나라는 글로벌리즘에 아주 푹 빠져 버렸다.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사회, 교육, 문화 전반의 가치를 바꿔온 것이다. 당장 기업이나 대학의 광고, 각 지역의 로고나 모토만 보아도 그렇다. 도대체 ‘글로벌’이라는 표현과 관련되지 않는 경우가 더 드물 정도이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글로벌 포항’이라는 모토가 관공서 입구마다 자리 잡고 있다. 그 뿐인가. 널찍한 땅이 있는 곳마다 테크노파크, 경제자유구역이니 하는 글로벌리즘에서 유래한 팻말들이 세워져 갔다.
하지만 최근 세계의 분위기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여전히 폐쇄적 시스템을 가동하는 중국이 먼저 분위기를 깼다. 세계화의 철학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 이득만 취한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글로벌리즘의 심장인 유럽연합에서도 분위기는 나빠지고 있다. 경제는 물론 국경까지 개방하는 무리 끝에 역풍이 발생하는 분위기이다. 글로벌리즘 반대 성향의 정당들이 득세하고 브렉시트도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미국은 최근 ‘글로벌리즘 보다는 애국주의를 택하겠다’라는 선언까지 주저 않고 해버렸다.
사실 그동안도 글로벌리즘에 대한 막연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글로벌 중심에서 소외된 지방도시로서는 글로벌리즘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까하는 의심도 할 법 했다. 그럴듯한 모토이지만, 지역에서 글로벌리즘의 진짜 덕을 본 사람이 얼마나 있나.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다. 잘나갈 때 별 도움 안주던 글로벌리즘이, 망할 때에는 또 같이 끌고 내려간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금융과 부동산에 낀 글로벌한 거품이다. 거품이 꺼지면 그 피해는 오히려 중심부보다도 주변부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리먼브러더스가 망했다고 지방의 자영업자들이 같이 망하는 건 대체 무슨 이치란 말인가.
이번 바이러스 사태는 이런 경향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체 중국 박쥐의 바이러스가 왜 대구경북에 와서 최악의 피해를 주고 있는가 말이다. 점심에 우한에서 박쥐를 먹고 저녁에 뉴욕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이 시대가 원인이라면 원인이겠다. 문제는 박쥐 맛도, 뉴욕 커피 맛도 모르는 대구경북인이 쓰러지고, 실업자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리즘에 대한 지역의 입장이 ‘막연한 추종’ 내지 ‘짝사랑’이었다면, 이제는 분위기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앞에서 말했듯 이미 세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번 바이러스 팬데믹이 글로벌리즘의 종언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글로벌리즘이 끝난다는 것이 물류도 여행도 사라진 폐쇄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가 끝났다고 해서 산업이 멈추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글로벌리즘의 현실을 이제는 제대로 들여다봐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허와 실을 정확히 해부해내고 대안을 찾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글로벌리즘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지역의 상황과 여건에 맞는 ‘대안적인 글로벌리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역의 글로벌리즘도 이제 빨리 돌아보아야 한다. 관청 주도로 타 지역의 프로토타입을 따라가던 개발 방식도 반성해야 한다. 포항의 경제자유구역만해도 그렇다. ‘의혹의 개발’이라는 성토와 ‘지역 발전의 신동력’이라는 찬사 가운데 과연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궁금하기만 하다. 글로벌리즘은 냉정한 위계와 랭킹의 세계이다. 따라하는 순간 유사품이 되고 뒤로 처지고 만다. 무작정 ‘올라타는 글로벌리즘’에서 이제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글로벌리즘’으로 바뀌어가야 한다. 그것이 이번 바이러스 사태가 지역에 주는 교훈이라면 교훈일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