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우리의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이경관기자
디지털 시대, 우리의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이경관기자
  • 승인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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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겨사는 현대인에
예술과 과학·환경 아우르며
느림으로 이뤄진 세계 선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을유문화사. 242쪽.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토마스 기르스트가 ‘오랜 시간의 힘’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을 찾아 모아 ‘세상의 모든 시간’을 출간했다.

우리는 24시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메신저와 이메일,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각종 알림음, 확인하지 않은 채 쌓여 가는 푸시 알림 속에서 우리는 웹과 앱 사이를 오가느라 바쁘다.

문화사학자로서 예술과 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토마스 기르스트는 현대 문화와 동시대 미술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써 왔다. 문화사를 꿰뚫는 그의 시선은 마침내 시간을 향해 가 닿았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밥 딜런의 말처럼, 오래 이어질 만한 가치는 반드시 시간의 빚을 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는 사색과 느림, 혹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의 가치를 찾아 나섰다.

앤디 워홀이 만든 600여 개의 타임캡슐인 ‘TC 시리즈’, 639년 동안 공연되는 존 케이지의 오르간 연주 ‘ASLSP’, 마르셀 뒤샹이 20년에 걸쳐 비밀스럽게 만든 생애 마지막 작품 ‘에탕 도네’, 수천 페이지로 쓰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저자의 여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미술과 음악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환경 등을 아우르며 느림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작은 시골 우체부가 33년간 돌멩이를 주워 만든 성, 14~19세기의 조리법으로 저녁 식사 코스를 선보이는 요리사, 수백 년간 풀리지 않았던 수학적 난제를 풀기 위해 고심해 온 수학자들까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존재들은 말 그대로 ‘시간의 힘’을 보여 준다.

긴 시간을 할애하는 마음, 끈기와 절제를 요하는 오랜 노력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축적되고 계승된다.

저자는 온갖 지름길과 속성 코스가 유행하는 이 시대에 감히 둘러가는 길을 권한다. 그는 사람들이 ‘뜻밖의 즐거움’ 또는 ‘행운’을 의미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 가까운 우연을 찾아가기를 희망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즉각적인 자극에서 벗어나서 때로는 우연에 몸을 맡겨 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자는 ‘디지털 디톡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느림’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기술의 시대가 주는 혜택을 누리되, 쫓기는 듯한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는 더 자유로워진다.

저자는 “한번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집중하며 스스로의 별을 따라가 보자. 긴 침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더 멀리 둘러볼 때, 우리는 과연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이 훌륭한 모험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내면의 고요함과 시간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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