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생이 소개시켜준 남편, 순수함 좋아 포항서 결혼생활3남 1녀 키우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고 사과밭 사 농사 시작
젊을땐 새마을 부녀회장도 맡아… 남편·자식들 덕에 행복
젊을땐 새마을 부녀회장도 맡아… 남편·자식들 덕에 행복
박정옥의 포항이야기<23>
고향 대구에서 이곳까지 시집왔다. 중매결혼을 했다.
남편 동생인 시동생이 대구에서 살아서 그의 소개로 만났다. 처음 만나니 너무 순수해서 좋았고 그래서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됐다.
이원식(81). 그 당시 대구 대자연예식장에서 그와 현대식 결혼식을 올렸다. 1972년 결혼 후 기북면 탑정리로 와 힘든 시집생활을 했다.
시부모 모시고 같이 농사짓고 살았다. 첨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와서 다 배웠다. 그때는 다들 힘들게 사는 시절이라 힘들다고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어른들이 농사일이나 살림살이를 많이 가르쳐 주었고, 논 농사, 여섯 마지기 고추농사도 지었다. 그것만 했지 뭐, 돈이 될 택이 없는데 농사는 수입원이 없어서 사과농사를 지었다. 대출내서 사과밭을 샀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살았다. 처음에는 무척 어려웠다. 아이들은 대구에 공부시키려 보내고 할머니가 아이들 초등학교부터 대구에서 교육을 시켰다. 친할머니가 방을 얻어서 3남 1녀 키웠다.
지금까지 하던 봉사활동은 나이 70에 은퇴했다. 요즘은 젊은 사람이 앞장서서 일하지만, 우리도 젊었을 때는 앞장서서 일했다. 새마을 부녀회장도 했고,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그만뒀다.
농업기술센터 소속의 생활개선회를 1991년 조직해 교육을 받고 와서 재래식 부엌을 입식 부엌으로 개선했다. 과제교육, 천연염색, 만들기 활동도 했다. 면소재지 자체 행사하면 음식, 사과축제, 음식봉사, 시연회 등을 자생단체가 도맡아 했다.
시집와서 시부모님들은 둘째가 군입대 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대구에서 시집 왔느니까 힘들게 사는게 늘 마음아파 했다. 이젠 그냥 남편만 바라보고 산다. 부모님께 잘하는 남편, 나갈 때 들어올 때 부모님께 인사하는 모습을 자식들도 그대로 따라한다. 자식들이 있어 행복하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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