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에 대한 연민은 '코로나19' 극복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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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에 대한 연민은 '코로나19' 극복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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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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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한민국과 일본을 강타하더니, 이제 이탈리아와 이란을 거점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는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위험 등급인 ‘팬데믹’(pandemic)으로 진입했다. 팬데믹이란 코로나19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불특정다수에게 감염시키는 단계다. 그 단계로 진입하면, 바이러스의 행로를 예상할 수 없어 위험하고 갑갑한 상황이다.

로마시대에 살던 그리스 의사이자 철학자인 갈렌(129-200년)은 의학에 관련된 논문을 120개 이상 남겼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그의 저작은 이슬람시대 아랍어로 번역됐다가, 다시 12세기에 들어서 라틴어로 재-번역됐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인 ‘데 크리시부스’(De crisibus) 즉 ‘위기’(危機)에 관하여‘라는 논문이 있다. ‘위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크리시스’(crisis)는 의학용어다. ‘크리시스’는 ‘질병의 전개에 있어서 환자의 회복과 죽음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란 의미다. 혹은 ‘그 전환점에 갑자기 두드러지게 등장한 병의 전개’란 뜻이다.

갈렌은 ‘크리시스’라는 용어를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로부터 빌려왔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의 운명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다’라는 그리스어 ‘크리네인’(krinein)에서 ‘크리시스’(krisis)라는 단어를 조어했다.

요즘 마음이 무겁다. 우리사회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동료들 때문이다. 그들을 돕고 싶은데 도울 길이 없다. 걱정으로 가득 차 산책길에 나선다. 산책길 물가를 지나는데, 청둥오리 한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곁눈질하며 가만히 서있다.

그곳은 갈대와 지난여름 낚시꾼들이 내다버린 페트병들로 가득한 소택지(沼澤地) 옆 논두렁이다. 내가 물가 안에 형성된 갈대 덤불 안을 살펴봤다. 새끼 오리 서너 마리가 물장구를 치며 수영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던 청둥오리는 10m 정도 떨어진 논두렁에서, 부동자세로 누가 침입하는지 경계를 서고 있던 것이다.

청둥오리는 새끼오리를 바라보는 나를 그 앙증맞은 눈으로 경계한다. 이 낯선 자가 미심쩍은 행동을 하면, 새끼오리들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버릴 참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새끼들을 위해 보초를 서려는 이 청둥오리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아침에 본 청둥오리의 심정으로, 오후 2시면 전 국민 앞에 서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그는 확진환자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차분하게 심각하게 불어나는 ‘코로나19’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갈수록 초췌해지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에게 이 사태처리에 관해 전권을 주고, 그와 같은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지혜로운 판단을 기준으로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그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수준이 답답하고 아쉽다. 선진국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에 적당한 최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최선의 방안을 선택한다. 전문가는 자신이 분야를 오랫동안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그 해결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위대한 리더는 그런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사람이다. 후진국은, 위기를 타결하기 위한 해결점보다는 이해관계를 먼저 따진다.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말은 간결하지만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연민’(憐憫)을 담고 있다. 연민이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고통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려는 본능적인 희생(犧牲)이다. 연민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의 가치다.

고대 히브리어 어근 ‘라함’은 상대방의 불쌍한 처지를 자신의 고통처럼 여기는 마음이며, 나아가 그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과 행동이다. 히브리어 동사 ‘라함’은 ‘깊이 사랑하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뜻이다.

구약성서 ‘이사야서’ 49.15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 이사야는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어린아이에 대한 가여운 마음을 히브리어 ‘라함’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라함’으로부터 파생된 두 명사를 보면, 그 의미를 좀 더 심오하게 알 수 있다.

하나는 ‘레헴’이고 다른 하나는 라흐민’이다. ‘레헴’은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다. 어머니는 생명력만 겨우 존재하는 씨를 자신의 몸속에 심어 임신하는 동안, 기적을 일으켜 씨를 온전한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인간의 태아는 커다란 뇌를 가져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거의 모든 온혈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걷고 자신 스스로 어미로부터 수유한다. 그러나 인간은 상황이 달랐다. 갓 태어난 아기는 너무 취약해 누군가의 돌봄이 없다면 생명이 위태롭다.

어미는 자신의 욕망과 배고픔을 억제하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수년 동안 아이를 돌본다. 부모의 ‘전적으로 이타적인’ 돌봄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이었으며, 아이는 어미의 행동을 통해 ‘이타적인 노력과 헌신’이 인간생존의 기초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두 번째 단어 ‘라흐민’은 ‘자비’란 의미다. 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인 관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의 원형이 바로 자비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를 억제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타적 인간성인 모성애를 배양시켰다.

아이에 대한 헌신적으로 사심이 없는 행위는 하루 종일 요구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집중해 자신이 없어진다. 아이에 대한 염려가 그녀의 삶의 중심이 된다. 그가 싫건 좋건 아이가 밤에 울면 일어나 젖을 먹여야 하고 아이가 아프면 자신의 피곤함과 분노를 절제하고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배운다.

‘코로나19’를 극복할 처방전은 고통당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자 자비의 행동이다. 우리 모두 정은경 본부장의 마음을 담아,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면 좋겠다. 당신은 동료 인간들의 고통을 느끼십니까?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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