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예쁘며,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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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예쁘며,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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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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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는 다양한 캐릭터의 전시장이다. 남들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김구라부터 짜증과 호통이 일상이 된 박명수, 자신보다 덜 유명한 동료를 우습게 만드는 전현무. 이들 모두 A급 출연료를 받으며 거의 모든 방송사 진행자 자리를 꿰찼다.

그런가 하면 도박 등 범죄를 저지르고도 캐스팅돼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타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캐릭터와 잘못에 관대한 건 남자에 국한해서다. 최근 KBS ‘거리의 만찬’ 사태가 좋은 예다. 이 방송사는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의 시선으로 시사 이슈를 다루는 포맷으로 호평받아온 프로그램의 세 여성 MC 교체를 발표했다.

대신 여성 극혐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와 숱한 공개 연애와 스캔들의 주역을 발탁했다(최근 이 결정을 철회하기는 했다). 똑같은 커리어와 이력을 가진 여성이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방송가는 여성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한결같다. 젊고, 예쁘며, 무엇보다도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돌 멤버를 출연시킨 예능 프로그램은 한결같이 그들에게 애교를 떨어보라거나 섹시 춤을 요구한다. 드물게 예외적인 캐릭터를 인정해주기도 한다. 프로그램 성격상 천편일률적인 상황을 피하고자 할 때다.

선하고 공정하기로 소문난 국민 MC 유재석이 박미선을 ‘박일침’ 누나라고 하거나 이효리를 ‘무서운 여자’라고 하는 식이다. 최근 창업이나 재테크 관련 멘토로 간만에 얼굴을 내민 한 방송사 녹화에서 나는 ‘독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이야 무엇이든, 방송가나 대중이 원하는 여성 캐릭터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외식업, 더 나아가 사업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를 지배하는 남성들은 여성에 유독 더 가혹한 기준을 들이댄다. 사업을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결함이 없어야 한다. 옷차림이나 언행도 완벽해야 한다. 짠돌이, 허풍선이, 범죄자, 책략가 등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가진 남자 사장과 달리, 여자 사장에 요구하는 것들은 거의 비슷하다. 그들은 전형적인 여사장을 원한다.

가끔 업계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가 있다. 아니, 가져야만 할 때가 있다. 참석자들이 가끔 선을 넘었다 싶으면 발끈하기도 한다. 일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뭐 그렇게까지 민감해하거나 까칠할 필요가 있느냐고 면전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양반이다.

뒷담화가 가관이다. 덕분에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닌데 ‘증권가 지라시’에도 몇 번 등장한 적이 있다. 그보다 더한 것도 있다. 얼마 전에는 사적으로 갈등을 빚은 남자 요리사들 몇이 험담을 보태고 퍼뜨리고 있었다. 차라리 대놓고 하고 법적 다툼이라도 벌이면 좋으련만, SNS 상에서 친구 공개 상태로 조리돌림 하는 식이다.

방송가든 사업의 세계든, 아직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다수의 남자가 소수의 여자 사장을 선택한다. 아니면 적어도 용인하는 식이다. 그들에게 찍히면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나는 한국에서 여성 스스로 홀로 선 기업가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의 기준에 나를 낮추어 맞추지 않고 내 원칙과 성격을 유지하며 살아남은 이가 있기는 할까. 여자 식당 사장으로 살며 거의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여영 (주)월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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