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아이돌
  • 모용복기자
내 마음 속의 아이돌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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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국민 여동생’ 혜은이
30년 결혼생활 끝에 이혼
김동현, 경제적 고통 받은
혜은이를 놓아주기로 결심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
팬들 속으로 돌아온 그녀
다시 한번 높이 날아오르길
모용복 선임기자.

70~8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질풍노도들의 최대 관심사는 연예인이었다. 그들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흑백 브라운관이 전부였기에 좋아하는 스타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날은 공부고 숙제고 종치는 날이었다. 당시 나와 동무들은 비슷한 외모를 지닌 두 여(女)가수를 놓고 ‘누가 더 예쁘네, 노래를 잘하네’하며 옥신각신 하곤 했다. 혜은이와 왕영은. 두 사람은 당시 청춘들의 아이돌이었다. 어차피 미모가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취향 따라 좋아하면 될 터인데 그때는 대단한 일인 양 입에 거품을 물었다. 생각해 보면 참 유치찬란하고도 까마득한 일이다.

그런데 수십 년 세월을 건너뛰어 그중 한 사람이 최근 들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다름 아닌 70~80년대를 풍미했던 원조 ‘국민 여동생’ 혜은이다. 그녀에 대한 소식은 간간히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었으며, 가끔 TV에도 얼굴을 비춰 근황을 알고 있는 터였다. 남편 김동현이 하는 사업이 잘 안 돼 거액의 빚을 지고 사기혐의로 피소돼 실형을 선고받는가 하면, 남편 대신 빚을 갚기 위해 혜은이가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밤무대까지 전전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한다는 소식은 필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보다 좀 더 놀라운 소식이다. 혜은이가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10개월 전에. 김동현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30년 잉꼬부부로 소문 난 두 사람이 이혼을 한 배경에 대해 세간의 궁금증이 큰 것은 당연지사. 부부간 속사정이야 당사자 외에는 잘 모르는 법이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결정적인 원인은 역시 김동현의 사업 빚 때문이었다. 김동현이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결혼생활 내내 고생을 한 아내를 놓아주기 위해 먼저 이혼을 제안했고 혜은이가 이를 받아들여 이혼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혜은이는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 후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제3한강교’ ‘파란나라’ ‘옛사랑의 돌담길’ ‘열정’ 등 얼핏 떠오르는 히트곡만 나열하기에도 숨 가쁘다.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그녀는 숱한 히트곡을 내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감성을 자극하는 청아한 목소리에 빼어난 춤 실력과 미모까지 갖춰 70~80년대 한국 여성가수 대표주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가수로서 인기와는 달리 결혼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1984년 나이 차가 꽤 나는 사업가와 결혼 4년 만에 성격 차이로 파경을 맞는 불운을 겪는다. 2년 후 적극적인 구애공세를 펼치던 김동현과 재혼을 하지만 파란만장한 30년 결혼생활 끝에 지난해 7월 황혼이혼에 이르게 된다.

이혼 이유에 대해 김동현은 모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혜은이가) 이제는 나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이 웃고 더 기운차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혼을 결심했다”며 “사랑하는 여인, 내 아이들의 엄마, 내 가장 좋은 친구가 이제 더 높고 멀리 날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별 열정적인 사랑을 해본 기억이 없는데도 나는 지금껏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뜨거운 피가 흐르던 시절,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떠나보낸다’와 같은 대사가 영화나 소설에 등장할 때면 속이 메스꺼웠다. 말장난 같았다. “역시 한국영화는 안 돼”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진부함을 비판했다. 사랑하면 함께 살면 되지 왜 떠나보내고 떠나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혜은이-김동현의 이혼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사업 빚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김동현의 아내로서 혜은이는 여전히 경제적인 고통에서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김동현은 자신 곁에서 혜은이를 떠나보내고자 결심한 것이다. 그는 사업에선 실패자일지 몰라도 사랑에서 만큼은 성공한 사람이다.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혜은이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비록 그녀가 직접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해도 후배 가수들이 꾸준히 그녀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외모와 음색이 닮은 가수까지 등장해 추억 속의 혜은이를 소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긴 세월의 터널을 지나 진짜 가수가 돌아왔다. 자고 나면 새로운 스타가 떴다가 지곤 하는 현기증 나는 세상에서 흑백필름 속 스타의 컴백이 나를 설레게 한다. 혜은이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톱가수였다. 어떤 시련도 그녀에게서 노래에 대한 열정을 앗아갈 수 없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난 그녀는 또다른 사랑을 찾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위해 사랑을 떠나보냈지만 팬들은 그녀를 다시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질곡의 30년 세월을 훌훌 털고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높아 날아오르길 기대해 본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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