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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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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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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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부터인가 도로에 배달 오토바이가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그 이유는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바로 ‘배달 앱’ 때문이었다. 원래 각 식당별로 인력을 고용하여 음식을 배달하던 것이, 몇 년 전부터는 ‘○○○민족’과 같은 공유배달 업체가 나타나 이를 대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달서비스를 공유하여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취지에, 결국 전국 대부분의 음식점이 가입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뒤의 전개상황이 참 괴상하다. 춘추전국처럼 여러 업체가 경합하다가 나중에는 한 업체가 천하통일을 이루는가 싶더니, 다시 몇 조라는 엄청난 가격에 독일 업체에 인수된다. ‘게르만 민족’이 ‘배달의 민족’을 대체하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공유경제’니, ‘모바일경제’니 하면서 새로운 모델인 것처럼 포장되었었지만, 결과는 이처럼 기대와 너무 달랐다. 자영업자는 배달 앱에 묶이고, 고객들은 원래는 없던 배달비를 내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글로벌 대기업이 지역 자영업 영역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유경제의 결과물 치고는 너무도 뜻밖이다.

오늘날은 ‘키워드’의 사회이다. 대부분의 소비와 교류가 이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지도가 높은 키워드 하나가 가지는 힘은 엄청나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분위기가 키워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역으로 키워드가 사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키워드가 사회적 흐름, 즉 대세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유경제가 바로 그런 영향력을 가지는 키워드이다. 사회를 바꿀 최신 패러다임의 하나로 늘 꼽히다 보니, 이제는 어디든 공유경제라는 말만 붙으면 첨단에 바람직한 사업인양 인식되어버린다. 하지만 키워드는 사실 한두 개의 단어일 뿐, 어떤 가치를 단단히 메어두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수없이 반복, 복제되고 퍼져가는 가운데 그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키워드 사회의 위험성이 있다. 공유경제라는 키워드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사실 공유라는 표현에는 양극화, 성장한계를 겪는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와 방향성이 담겨 있다. 개인이 가진 필요 이상의 자산과 서비스를 공유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약간의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이를 소비하는 개인 역시도 적은 부담으로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다. 자원 낭비를 줄이고 지역의 고용도 늘어날 수 있다. 공급과 소비가 보다 인간적으로 맺어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고급, 첨단, 대량생산 중심의 현실에서 이처럼 공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적지 않다.

하지만 공유경제의 의미는 이제 처음과는 완연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주거 공유를 위한 ‘에어비앤비’가 나타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러다 교통수단을 공유하는 ‘우버택시’가 나타나면서부터는 일종의 정보통신사업처럼 의미가 변해갔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독점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공유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중 하나인 정보통신 플랫폼이 이제는 오히려 주인공이 되어버린 격이다.

음식점마다 힘들게 유지하는 배달인력을 함께 공유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배달 앱도 처음에는 공유의 가치를 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글로벌 독점기업의 탄생으로 끝났을 뿐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이른바 ‘공유 승차’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언뜻 보기에는 차고 넘치는 자동차를 공유함으로써 편의를 높이고 서민들도 이익을 얻는 사업인 듯하다. 하지만 앞의 사례들에서 비추어 보면, 각 지역의 택시영업까지도 대기업이 주름잡게 되는 결말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공유경제라는 포장 속에서 약간의 편의를 미끼로 하여 대기업이 영세업체들까지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 이것이 과연 첨단이고 가야할 미래인 것일까.

단지 ‘공유경제’라는 대세 키워드에 반할 것이 아니라, 그 가치가 제대로 발휘되는 사업과 정책을 진지하게 찾아보았으면 한다. 공유경제 개념에는 오늘날 경제체계가 해결하지 못한 틈새들을 막아줄 수 있는 힌트들이 많이 들어 있다. 또한 공유경제는 탈 중심화, 지방자립, 참여경제와 같은 방향성과도 잘 어울리는 개념이다. 그러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 속, 자족적이고 자발적인 지역경제가 강조되는 시점에는 더욱더 필요한 개념이라 생각한다. 기업과 시장의 논리에 그저 맡겨둘 것이 아니라, 각 도시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정책화해가야 할 대상인 것이다. 공유경제의 의미를 제대로 고찰하여 힘든 시기를 지나가는 귀중한 정책도구로 활용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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