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많았던 인생, 평생의 벗 ‘음악’ 있어 행복했지예”
  • 경북도민일보
“우여곡절 많았던 인생, 평생의 벗 ‘음악’ 있어 행복했지예”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0.0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만도씨
군부대 연예대
우창 최만도 월남전 참전2
우창 최만도 해병대 연예대의 구룡포 봉사공연
우창 최만도
우창 최만도아들 졸업식
월남전 참전1

최만도의 인생이야기<31>

포항시 북구 창포동 창포주공아파트의 코딱지만한 공간이 내 삶의 터전이다.

포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50년 이상을 살면서 이제 뼈를 묻어야 할 이 땅에서의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부산에서 3남2녀 5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해병대 군무원이었던 아버지가 6살 때 해병대사령부 조달감실로 근무지가 이동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이태원 초등학교와 중고등 과정이 있는 한광고등공민학교에 다녔다.

1968년 군에 갈 무렵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했고 해병대의 연고가 있어 지인이 많은 이곳 포항으로 전 가족이 이사를 오게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사 오기 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0대 때 처음 기타를 잡고 음악을 시작했는데 짧은 기간에도 재능을 인정받았다.

1968년 9월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사단내 연대별로 결성된 연예대에 배속되면서 음악과의 인연을 주욱 이어졌다.

음악재능을 가진 장병들로 구성된 연예대는 사단내 사소한 행사는 물론 구룡포 등 지역을 다니며 음악봉사활동을 했다. 포항여자합창단과 구룡포에서 무료도 공연한 기억도 난다. 그러던 중 해병대 연예대 선배인 남진의 문제로 대통령지시에 따라 연예대가 해체되면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본대 복귀와 동시에 일병을 달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작전에도 참여했고 청용부대 5대대25중대 소속으로 베레아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미군과 사상 최대 합동작전으로 희생자가 많았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고통스러웠다. 월남에서 1년을 복무라고 병장달고 귀국해서도 강화도 수색대대에서 1년을 더 근무했다. 1949년생들의 군대생활이 대부분 1년 더 늘어났다.


1971년 제대후 포항 신흥동 수도산 아래에서 식구들과 함께 지내면 예총산하 포항연예인협회 분회를 조직,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연주하던 기타를 전자오르간을 바꿔가며 40년 가까이 쉬지 않고 해온 음악생활. 음악은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가족을 위한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다른 직업보다 수입이 좋았지만 밤낮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에 노는 날에는 빈손이었다.

32살 때 6살 차이나는 아내를 만나 결혼햇다. 아들 둘을 낳았는데 이런 불규칙적이고 안정되지 못한 직업 때문에 결혼 15년 만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아내가 떠나자 두 아들을 주공아파트 좁은 집에서 키웠다. 해준 게 없는 아버지이지만 두 아들은 잘 자라주었고 독립해서 잘 지내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아버지가 사는 13평 집에 찾아와 삼겹살 파티를 한다.

아내와 헤어진 후 제 생활을 되돌아보고 봉사활동 쪽으로 관심을 가졌다. 자랑할 것 없는 재능이지만 아파트단지내에서 두세 번 연주회도 열고 우창동 새마을협의회 일도 20년째 했다. 체육대회 땐 동네응원단 연주봉사도 하고 10년 가까이 통장으로 일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택시운전도 당뇨병 때문에 사납금을 못 맞추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해병대전우회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70년 세월을 되돌아보면 우여곡절의 굽은 길도 많았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 음악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