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 무덤-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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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의 무덤-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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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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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물은 가만히 놓아둔다고 해서 그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도나 수준이 전보다 못해지거나 나아지는 것, 둘 중 하나이다. 풀을 베는 낫은 녹슬지 않지만 버려둔 낫은 이내 녹슬어 못쓰게 되듯 우리는 항상 진보와 쇠퇴 사이에 존재한다. 진보의 근원은 근면이고 쇠태의 근원은 태만이다. 태만은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고 일하거나 움직이기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게으르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할지라도 인간사에 통용되는 보편적 진리는 시대를 관통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이다. 성공적인 삶은 그만큼의 노력과 성실의 자본이 들어감으로써 얻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은 성공을 한순간의 눈부신 비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별한 행운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했다는 점이었다. 그 누구일지라도 부지런함이 바탕이 되지 않는 성공이나 성취는 결코 없었다.

이와 반대로 모든 실패와 낙오의 근본적인 원인은 게으름에 있다. 또한 게으름 속에는 온갖 해악이 내재되어 있다. 아마도 게으름이란 단어만큼 나쁜 의미로의 확장성과 악종을 가진 단어는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도 태만이나 게으름을 단순히 인간의 결점으로 치부하지 않고 죄악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고, 프랑스의 작가 위고는 게으름에는 도적이라는 아들과 궁핍이라는 딸이 있다. 라고 했다.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숱한 위인들이 나태, 태만, 게으름이 모든 죄악의 기본이 된다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게으름은 온갖 불행의 근원이자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고 고통의 감내 정도가 다른데 게으르거나 태만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많은 경우, 게으르거나 태만하다는 것을 움직이지 않는 정적상태를 의미하고, 부지런하다는 것을 쉴 새 없이 분주히 움직이는 동적상태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중요한 차이는 바쁘게 움직이느냐 아니냐의 문제로만 다룰 게 아니라 몇 가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첫째,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흔히 게으른 사람은 힘든 일을 전혀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분주하게 살고 있으므로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인 일상을 바쁘게 사는 것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게으름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향한 가능성”을 지향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말한다. 목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해야 할 학생이 밖에 나가 노는데만 열심이라면 결코 성실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열정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열정이 없는 것도 게으름이다. 뜨겁지 않은 증기는 기관차를 움직일 수 없듯 어떤 성취도 열정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큰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열정이 없으면 시들어 죽고 만다.

세 번째는 삶에 대한 권태이다. 누구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귀찮아할까 봐 망설여지고, 누구를 만나고 싶어도 반가워할 것 같지 않고,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냥 무료한 시간 속에 외로움만 더해간다. 이게 바로 삶이 권태로울 때 생기는 현상이다. 삶이 권태로워지는 건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 속에 모든 게 시들해 보이고 싫증이 나니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할 일이 없다는 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전해보지도 않으면서 미리 가상한 난관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은 자꾸만 녹슬어 간다. 그러다보니 하릴없는 시간 속에 생각만 많아져 방종하며 고인 물처럼 하루하루가 썩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게으름이라고 했다. 움직이지 않는 까마귀는 굶어죽고 게으른 자는 자신의 병도 고치지 못한다. 실제로 암이나 중병에 걸렸다가 완치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모두 매우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현상은 복잡하지만 삶의 성공을 이루는 법칙은 단순하다.

“목적에 열정을 가지고 근면 성실하라”

늪과 같은 게으름 속에 빠져 자기화가 이루어져 버리면 자책도, 후회도 모두 놓아버리고 현실을 망각한 채 자신의 내면과도 이별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어도 무덤 속 같은 늪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무조건 성공하거나 행복하지는 않았다.’라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삶의 행복을 누리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지런하며 성실했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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