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가위손’ 세자매 엄마 올림픽 성화 봉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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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가위손’ 세자매 엄마 올림픽 성화 봉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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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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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손재주로 고교 졸업 후 서울서 미용기술 배워
학원 차려 수강생 배출까지 했던 35년 ‘가위손’ 인생
남편 간호 위해 과감히 정리… 봉사하며 손 재주 뽐내
장경란님
장경란님 성화봉송
장경란님 결혼식

장경란의 인생이야기<32>

포항 남빈동에서 태어났고 원래 손재주가 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 가서 미용기술을 배웠다.

주위에서 추천해서 시작하게 됐고 35년이나 이 일을 했다. 이제 손을 놓은 지도 벌써 18년이 됐다.

결혼해서 23살에 지금의 남빈동 420번지 가구 골목에서 미용실을 개업했다. 그러다가 경일미용학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내 우체국 근처로 옮겨 시작했다. 7년간 수강생을 배출했지만 건물이 팔리는 바람에 그만뒀다.

처음엔 주위에서 엄청 많이 도와줘서 힘들지 않았다. 지금도 미용실 자리는 친정집이 있어 그대로 있다.

남편은 한일정비에서 관리직 상무까지 했다. 간암이 와서 직장을 그만뒀다. 봉사 활동도 참 많이 했다. 미용협회지부장 임기 기간 동안 당시 도립병원 정신병동 등에서 회원들과 함께 미용 봉사를 했다.

봉사를 하면서 애로사항도 많았다. 환자들이 가위를 뺏으려고 덤비는 바람에 무서워 도망다니기도 했다.

가정생활은 별 문제가 없었다. 집에는 일하는 사람들 둬서 아이들과 남편의 불만이 없었다. 남편은 아이들 다 태워주고, 돌봐주었다. 남편이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격이어서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그랬다.

남편과는 연애결혼을 했다.

시댁이 국제약국을 했는데, 약 사러 갔다가 우연히 그를 만났다. 중앙동 우체국 바로 옆 칠성다방에서 자주 만났다.


연애를 몇 년하다가 23살에 현대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흥동 시댁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 꿈같은 신혼생활을 했다. 남편은 정직하고 온화한 성격인데다 장남이 아닌 둘째라서 좋았다.

자식은 딸만 셋이다. 세 자매들이 모두 착하다. 조금이라도 성가시게 하질 않았다. 자매들끼리도 두 살, 다섯 살, 일곱 살 터울인데 무럭무럭 잘 컸다.

미용실은 남편 건강 때문에 접었다. 아이들 대학 졸업하고 그만둘 수 있을 때 였다. 과감하게 정리했다. 남편 간병을 오랫동안 했다. 주위에서 남편 간호 잘 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다 마지막에는 선린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아가셨다.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직 약도 안 먹고 아픈 데도 별로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성화 봉송도 했다. 단체장들 중에 뽑아서 추천했는데 당시 미용협회장 자격으로 뽑혔다.

포항종합운동장 호돌이 탑에서 대이동 사거리까지 성화를 들고 봉송했다. 포항은 그때 경제적으로 좋았을 때였고 시민들의 호응도 높았다. 성화를 들고 뛸때 그때 기분은 뿌듯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지금도 경성 양학마을 경로당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그냥 좋아서 봉사활동을 한다. 노인들에게 점심도 해드리고, 병원에도 모셔드리고 한다.

자녀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먼저 남을 생각하라. 욕심내지 말고 윤기 있게 살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라. 부지런하고 서두르지 말고, 즐기면서 살아라.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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