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갑질과 벼랑 끝에 선 ‘한반도 운전자’
  • 모용복기자
북한 갑질과 벼랑 끝에 선 ‘한반도 운전자’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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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변덕으로 남북관계 파국 치닫아
잘못 지적하고 바른 길 이끌어야 할
문 대통령 현명함 보이지 않아 답답
10여 년 전 모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된 개그 프로그램 ‘사모님’ 코너에 등장하는 멘트가 세간에 유행한 적이 있다. 돈만 많고 머리에 든 것 없는 사모님이 고급 자동차 뒷좌석에 탄 채 김 기사를 향해 걸핏하면 “김 기사 운전해~”라고 말한다. 자신의 무식함이 탄로나거나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이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전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 프로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김 기사가 단순히 사모님 지시만 따르기보다 그의 어리석음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맛보게 하는 ‘대리만족’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운전사가 현명하지 않았다면 사모님의 갑질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자동차가 향할 곳이 평지가 아닌 벼랑이나 계곡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겠다던 또 한 명의 운전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반도 운전자론’을 꺼내들고 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쥐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대북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3년이 흐른 지금 문 대통령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비상등이 켜졌다. ‘사모님’(북한)의 변덕으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현명함이 ‘운전자’인 문 대통령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들은 통쾌함을 맛보기는커녕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북한이 지난 9일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한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차단한데 이어 대남(對南) 업무마저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적 사업’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로써 한동안 끊겼던 판문점 채널이 한반도 평화 무드와 맞물려 복원된 지 2년 5개월 만에 다시 단절된 것이다.

북한이 대화채널을 단절한 표면적인 이유는 남측 탈북민들이 살포한 대북전단(삐라)이 발단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이례적으로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에 이어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와 우리측 대응을 비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탈북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가 지속돼 온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김여정은 지난 4일 담화에서 남북관계 단절 조치로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언급했다. 그 중 첫 번째로 남북간 연락채널 단절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는 고의로 긴장관계를 조성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과거에도 남북관계 경색국면 조성 첫 단계가 연락채널 차단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 대응에 따라 다음 수순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여정 담화는 바로 그 로드맵을 보여준 것이다. 한 마디로 문재인 정부 길들이기라는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국제사회 대북제재 장기화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19에 의한 사회적 혼란까지 겹쳐 심각한 위기에 처한 북한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 주민들 적대감을 밖으로 돌려 내부결속을 유도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지금 북한 내부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볼 때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로 남측을 때려 내부혼란을 잠재우고 동시에 남측 정부를 길들여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이번에도 사모님의 갑질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북한의 압박에 깜짝 놀란 통일부는 연락채널을 단절한 지 하루 만인 지난 10일 전단을 살포한 탈북민 단체를 고발하고 법인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과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을 당론으로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탈북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를 적용한 사례가 없고 보면 북의 압박에 의한 ‘굴종 외교’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연락 단절이 무슨 대단한 사건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아무리 북한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서슬 퍼런 독재 집단의 압제를 피해 자유대한 품에 안긴 탈북민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망나니같은 사모님 갑질에 주눅 든 운전자가 이끄는 한반도라는 자동차의 앞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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