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터 좋은 흥해서 7대째 살고 있지요”
  • 경북도민일보
 “집 터 좋은 흥해서 7대째 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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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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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매 중 장남으로 아버지 대신 미나리깡으로 잡비 벌어
38년간 초등교사로 교직생활 하며 청룡훈장도 수상
“금 가고 상처 많은 집이지만 아파트보다 훨씬 좋아요”
정기창씨 현재 모습
정기창씨 부부

정기창의 포항이야기<36>

“미나리 깡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잡비를 벌었지요.”

4남매에 딸 하나 고아원에서 입양한 동생 그렇게 5남매의 장남으로 살았다. 어린 시절, 흥해는 보리밥 도시락 뿐 이었다. 국회의원 집과 정미소집에서만 쌀밥 도시락을 구경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대신, 장남인 나는 미나리 깡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잡비를 벌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늘 바빴다는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외동이어서 서울서 학교 다니다가 그만두시고 돈을 못 벌어서 모친이 고생이 많았다. 어머니는 영덕 남정면 촌에서 태어나서 49세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65세에 술 드시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싸움을 잘해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어린 시절, 동생들은 착하고 말을 잘 들었다. 아버지는 술 드시고 오면 잠을 못 자게 했고, 돈을 달라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은 어머니 말을 잘 들었다. 어머니는 “술을 먹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래서 동생들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직장 퇴직하고 이제는 술을 먹으나 안 먹으나 같다고 해서 반병 정도 마신다.

고조부 때 돈을 벌어서 논을 사고 증조부 때 일구어서 아버지는 일도 안 하시고 학교도 서울에서 다녔다. 동지상고를 졸업하고 포항수산전문대를 졸업 후, 초등학교 정교사 시험을 봐서 교사가 됐다. 당시 전문대 수산과를 나와 배 타려고 하다가 집에서 반대를 했고, 당시 고모부가 교사여서 이 길을 권해서 교사가 됐다. 당시는 1000명 중에 500명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던 시절이어서 공무원이나 교사보다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더 인기가 많았다. 처음 교사 발령지는 대보초등학교에서 3개월 반 한 뒤 군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 영덕과 흥해초등학교 등에서 38년 동안 교사로 근무했다. 군 경력을 포함해서 41년의 교직 생활을 하고, 청룡훈장도 받았다. 교사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흥해초등학교 졸업한 20살 처자가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3학년 때 가르쳤던 제자였다.

현재 살고 있는 집 터가 좋아 7대째 여기서 살고 있다.


논 농사는 다른 사람이 지었고, 우리는 미나리 깡에서 나오는 미나리로 살았다. 밤에 아버지가 술 드시고 오면 친구 집으로 도망쳤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 당시에는 다들 교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포스코 등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대우가 배나 좋았던 시절이었다.

지금 현재 살고있는 이곳은 대지 175평, 서류상 169평의 집이다. 주위에서는 집을 지으라고, 아파트가 좋다고 하지만, 여기 있으면 터가 좋아 밥은 먹고 산다. 살아보면, 편안하고 마당이 넓어 시원하고 좋아 이사 갈 생각이 없다. 그래도 요즘은 밥 못 먹고 사는 사람들 있나. 지진으로 집에 금이 가고 문들이 뒤틀렸지만, 이 집에서 살고있는 것이 좋다. 처음 초가집에서 슬레이트와 양철지붕까지 현재 이 집은 40년 이상이 되어서, 문을 고치려고 해도 문을 만들지 않아 수리를 할 수 없다. 그저 밥 먹을 정도로 연금을 받고 있는데, 그나마도 일시불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고, 아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고 아직 장가를 안 갔고 초등교사다. 막내는 공무원인데 아직 미혼인데 선을 봐도 성사가 잘 되지 않는다. 사위는 삼성의 부장이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출신이다. 50살에 이사 못되면 퇴직해야 한다고 해서 걱정이다.

아들은 벌써 교사생활 20년이 다 돼 가는데 승진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임용고시 1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 했는데 평범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살고 싶단다. 하지만 부모로서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매사에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녀들이 모두 멀리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명절이 되면 다들 내려온다. 딸도 친정이라 집에 와서 하루는 자고 간다. 아내는 한 달에 두 번은 서울 자식집 올라가서 밥 해주고 집안 정리해 주고 내려온다. 그게 행복이란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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