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밤과 제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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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밤과 제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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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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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오성은 작가
최성원 ‘제주도 푸른밤/오늘은’

-그것만이 내 세상

음악은 때때로 질문 속에서 자라난다. 음악만이 아니다. 나도, 당신도, 사랑도, 죽음도,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세상과 투쟁했다. ‘미니멀(minimal)’이라는 외래어가 주류에 대한 저항이라 멋대로 해석하고 다녔고, 해체라던지, 소외라던지 하는 철학적 테제를 삶으로 끌어당기느라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이해하는 건 없었다. 다만 뭐라도 되겠지, 되지 못하면 어쩌겠냐, 그래도 글은 놓지 말아야 한다, 글 정신을 다져야 한다, 다짐하고 각성하던 시기였다. 평범한 대학 생활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며 글공부를 해나갔고, 방송에 출연하여 근근이 생활비를 벌어들였다. 전국의 포구를 다니는 프로그램의 리포터였으나, 직업 방송인으로는 별 흥미를 붙이지 못하던 시기였다.

오직 음악만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 여겼던 십 대 시절의 맹목적인 믿음이 몸속에 녹아 있었던 탓인지 내 안의 공허를 늘 음악적 갈망 때문이라 여기곤 했다. 차라리 그렇게 마음먹는 게 편했다. ‘음악이라는 녀석이 존재하기에 나는 허전하다’는 명제가 결국 해답처럼 명징하게 다가왔으므로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난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헌신적인 부모는 자식의 가난을 두려워했기에, 그 가족의 일원 중 유일하게 가난하지 않은 이는 자식뿐이었다. 그 어리석음의 시기를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결코 부모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나는 그저 용기가 없었다.



-매일 그대와

음악과 문학을 비슷한 영역으로 여겼던 터라 노래 부르다 감상에 젖는 날이 많았고, 책을 읽다가 흥얼거리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학교 선배가 어느 날 ‘펜으로 기타를 치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고, 한 소설가는 소설보다는 음악이 더 빠른 길인지도 모르겠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자신에게 솟아나는 돌연한 감정에만 흥미를 가지던 젊은 나르시스트는 점차 음악도 문학도 글도 기타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십 대의 혼돈이라면 나는 정통으로 그 시절을 겪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시곗바늘에 등이 찔린 채로 가까스로 견딜 뿐이었다. 한 발을 내밀 수도, 뒤돌아 갈 수도 없었다. 함께 그 시절을 견디던 형들과 제주도를 여행한 건 그즈음이었다. 우리는 미니멀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싸우고 울고 웃기도 했지만, 무지는 있되 거짓은 없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그 지점이었다. 강정마을의 어촌계에서 제비집을 관찰하고, 술을 마시고, 해장국을 먹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일은 바로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기타만 보면 주변을 의식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결국 기타를 가만둘 수 없었다. 조율 후 코드를 튕기자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은 우리를 지하의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넓은 공연장이 나왔다. 그곳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홀로 제주를 여행하던 한 여인이 무대 위로 대뜸 올라서더니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일렉기타를 잡았고, 또 다른 이는 퍼커션을 두드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밴드가 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든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라는 곡을 불렀고, 윤도현의 ‘박하사탕’을,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불렀다. 노래는 이상은을 통과하고 유재하를 거쳐 결국 들국화로 나아갔다. 주인장은 이제 손님들이 자야 하니 바다로 나가자고 했다. 술에 취한 우리는 기타를 들고 한적한 바닷가로 걸어갔다. 바다 앞에서 자리를 잡고 캔맥주를 기울이던 차, 사장님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대뜸 내게 건넸다.

“인사해. 최성원 선생님이야.”



-제주도 푸른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신화 속 영웅과의 짧은 통화를 받아냈겠지. 주억주억. 술은 금방 떨어졌지만 잠시 숨을 돌리고 나면 다시 새 술이 채워졌다. 파도 소리는 거칠게 밀려왔고, 한참을 머물렀다. 우리 곁에 머무는 게 바다인지 술인지 노래인지, 어쨌거나 밤은 이어졌다. 제주로 우리를 초대한 형이 최성원 선생님의 ‘제주도 푸른밤’을 기타로 연주했다. 우리는 누구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오직 파도만이 제 일을 할 뿐이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생활을 했는데, 들국화의 노래를 줄곧 불렀노라고 고백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과 ‘매일 그대와’를 부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내가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는지를 고백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질문했다.

“성은이는 계속 음악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네.”

그렇게 말한 이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었던가, 나의 형제들이었나, 최성원 선생님이었을까, 어쩌면 파도였을까.

“어디에도 답은 없어요. 제주에도요.”

제주의 밤은 한동안 멈춘 듯 했다.

나에게 그 밤의 풍경은 꿈처럼 어렴풋이 남아 있다. 글도 노래도 사랑도 미움도 질문 속에서 자라나던 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울지 않던 그 밤이. 오성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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