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용 도시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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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용 도시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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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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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일 년에 한 번 정도 장학관 방문 행사가 있었다. 그들이 수업을 참관하는 날이 다가오면 학교는 전혀 다르게 바뀌곤 했다. 완벽한 청소는 물론, 평소 없던 장식들 까지 동원되어 교실이 꾸며지곤 했다. 학생들 외모, 옷차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수업시간에 누가 책을 읽고 누가 질문을 한다는 식의 시나리오도 정해질 정도였다. 이런 경험은 군 시절에도 데자뷰처럼 나타난다. 어쩌다 별이 달린 분들이 뜨는 날이면 부대는 청소상태에서부터 식사 메뉴에 이르기까지, 귀한 방문객 한사람을 위해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했다. 우습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학교와 군부대를 시찰했던 장학관, 장군들은 그런 교실과 막사를 살펴보고 과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모르긴 해도, 꾸며진 전시용 학교, 시찰용 군대에 감동을 받았을 리는 없다. 제대로 된 현실과 급조된 보여주기 쇼는 절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문제는, 많은 도시들이 이런 보여주기 쇼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서울의 명동을 떠올려 보면 된다. 수많은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서 현란한 광고판과 미모의 젊은이들을 앞세워 손님을 부른다. 한국에 왔다면 이건 꼭 사야해라고 외치는 것 같다. 뒷골목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왔으니, 이건 꼭 먹고 가야해라고 외치는 것 같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외국인들은 마치 컨베이어벨트처럼 줄을 서서 들어와 사고 먹고 또 출발하곤 한다. 이처럼 수백만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지만, 한국인들은 모두 안다. 거기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진짜 한국이 아닌 ‘관광용 세팅’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 한때 명동은 패션, 음악, 연극영화 등 한국 문화의 메카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명동은 한국의 현실과는 구분된 ‘관광용 도시’에 가깝다.

언젠가부터 관광이 강조되면서, 지방 도시들도 이런 관광용 도시의 전철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쇠락하는 지역일수록 관광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인식이 정책가와 주민들 모두에게 팽배하다. 그러다 보니, 관광에 유리하다는 사업은 앞뒤 안보고 따라 하게 되고, 종국에는 팔도 어디를 가도 차별 없는 유사한 광경이 펼쳐진다. 도시를 들어서면 으레 보게 되는 한 쌍의 남녀 캐릭터 - 보통은 윙크에 한손 엄지손가락 척! ? 는 물론, 영어와 지역명이 조합되는 식의 브랜드는 이젠 식상하고 구별도 안 된다. 지역의 몇 대 명소, 몇 가지 코스니 하는 식의 관광안내를 따라 가보지만, 최근에 조성된 창백한 시설물, 조형물들이 뜬금없기만 하다. 무슨 기념관, 전시관에서 무표정한 사무원에게 표를 받고 들어가 보면 규모에 비해 턱 없이 빈약한 전시물에 실망하곤 한다. 그래도 지역의 본 모습을 보고 싶어 맛집, 재래시장, 야시장 등을 찾아 보지만, 역시 어디서 본 듯한 관광용 세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느 도시나 이런 관광용 클리셰가 가득하다 보니, 관광객으로서도 질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국내에는 갈만 한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웬만해선 해외로 휴가를 가려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관광객들을 계속 이끄는 힘은 결국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향취이다. 그 지역에 오랫동안 쌓여 온 삶과 문화의 흔적들인 것이다. 오직 관광활성화를 위해 급조한 세팅이 일회용 관광을 양산할 뿐, 지역의 근본적 매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 관광이 지역 발전에 그처럼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관광이 지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세계를 봐도 이집트, 그리스처럼 관광 그 자체인 나라를 제외하면 유수의 관광대국들도 7%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후진국일수록 관광산업의 비중이 극도로 높다. 관광으로 도시가 발전한다기보다는, 발전한 도시가 관광에도 유리하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세계적 관광도시를 돌아보아도 그저 ‘우리가 살아온 도시를 그대로 보여줄 뿐’이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관광을 위해 온갖 캐릭터, 브랜드, 코스를 만드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도시의 본연의 역사와 문화에 충실하면서,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결국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된다. 관광객들이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 곳의 진짜배기(authentic) 모습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를 살리는 것은 관광객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다. 시민이 즐거운 도시라면 관광객도 즐거울 것이고,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라면 관광객들도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시민의 얼굴이 찌푸려진 도시에 관광객이 유독 넘쳐날 리도 없는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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