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최숙현을 누가 죽음으로 내몰았나
  • 모용복기자
23살 최숙현을 누가 죽음으로 내몰았나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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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숙현 선수 가혹행위 호소
국가·지자체·경찰·체육계 외면
피해자가 학대사실 밝히기 위해
번번이 목숨을 내던져야 한다면
정상적인 국가고 법치사회인가
사건 터질때마다 대책 내놓지만
비극적인 사건 되풀이해서 발생
가해자들 합당한 처벌과 동시에
관련기관 부실대응 엄중 문책을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체육 병폐
환부 도려내는 대수술에 나서야

요즘 경주가 시끄럽다. 천년고도에 몰린 관광객 때문이 아니다. 깡패 체육계 때문이다. 지금 전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경주를 맹폭하고 있다. 정부와 체육계가 스포츠분야에 만연한 구타와 폭언을 근절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또 한 명의 선수가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 국가와 지자체, 경찰, 체육계가 철저하게 그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였다. 우리 사회가 그를 벼랑 끝으로 내 몬 것이다.

감독, 주장, 팀 닥터 등이 자행한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지난달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 그의 죽음 이면에는 최 선수와 가족들의 눈물을 외면한 관련기관의 수수방관이 있었다. 만약 어느 한 기관이라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이처럼 비극적인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기관들의 책임이 작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최 선수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지난 2월 최 선수 가족이 제출한 진정서를 접수하고도 가해 당사자로 지목된 김규봉 감독과 전화 통화 한 번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최 선수 가족에게는 통보조차 하지 않고 조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가 기관과 지자체, 경찰도 오십보백보다.

소속 선수를 보호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주시의 대응은 가관이다. 최 선수 부친이 지난 6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가해자들이 무소불위로 날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부친 최 씨는 지난 2017년에 이어 2019년에도 딸이 겪은 일을 경주시에 알렸다. 시청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자 전화를 걸어 조사 진행 상황을 묻자 담당 공무원은 도리어 화를 냈다. 또 지난 2월에도 경주시청을 찾아가 감독 등의 폭행사실을 알리며 징계를 호소했으나 외면 당한 것은 물론 “고소하고 싶으면 하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경주시 관리감독 부재와 묵인·방조가 악마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체육계 폭력사태’ 해법을 담은 권고안을 반년 동안 미루는 바람에 최 선수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에 대해 성폭행 사실 고발한 이후 체육계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해 2월부터 체육계 성폭력과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특조단)을 설립, 직권조사를 통한 스포츠계 실태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인권위는 특조단이 직권조사한 결과를 논의하고 총체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담아 관계 국가기관에 건의하기로 전원위원회에서 합의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바로 실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6개월이 흐른 지난 6일 다시 전원위원회를 열어 당시 의결 건을 재상정해 다시 의결 처리하는 촌극을 빚었다. 그러는 사이 최 선수는 인권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끝내 생을 내려놓고 말았다. 인권위라는 이름이 아깝다.

故 최숙현 선수 유족과 동료 선수들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축소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에서 담당 수사관이 일부 진술을 삭제했고, 벌금 20만∼30만원에 그칠 것이라며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북지방경찰청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수사 축소 의혹이나 담당 경찰관의 부적절한 언행 등이 실제로 있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같은 식구끼리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故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책임 있는 기관 어느 한 곳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데가 없었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다음에야 부랴부랴 진상파악과 책임자 처벌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그러나 피해자가 학대사실을 밝히기 위해 번번이 목숨을 내던져야 한다면 그게 정상적인 국가이고 법치주의 사회인가.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외양간이 제대로 고쳐진 적이 없다. 그 결과 계속해서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대한체육회, 경주시의 방관과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해 일벌백계로써 엄중 문책하는 한편, 최 선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에 대해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이 낳은 병폐에 대해 환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에도 나서야 한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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