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예송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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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예송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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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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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예송논쟁이 21세기에 부활
서울특별시장(葬)·5일장 놓고 쟁점
정치권 이어 국민까지 확대되는 현실
무의미한 예송으로 국력 소모한 과거
코로나19·경기침체 극복 등 현안시급
무차별 논쟁보다 성찰·상식 사회돼야
조선 제18대 임금인 현종 재위 시절, 부친인 효종이 승하하고 나서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 치열하게 논쟁했다.

이른바 조선 최고의 논쟁인 예송논쟁(禮訟論爭)이다.

1차 논쟁은 효종이 승하하자 자의대비(장렬왕후)의 상복 기간에 대해 서인들은 1년만 입을 것을 주장했다.

자의대비는 인조의 계비로 효종의 친모인 인렬왕후의 뒤를 이어 국모가 된 여인이다.

사대부들은 장남 이하의 아들에 대한 상복을 1년 입었는데,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므로 사대부의 법도에 따라 1년짜리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인들은 효종이 비록 둘째 아들이지만, 엄연히 왕이었으므로 사대부의 법도가 아닌 왕실의 법도대로 3년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효종의 아내이자 현종의 친모인 인선황후가 승하하자 또 다시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양측이 대립한 2차 예송논쟁이 발발했다.

서인은 인선황후가 차남의 아내란 이유로 9개월을, 남인은 왕의 아내인 만큼 1년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극렬한 다툼과 갈등을 빚은 조선시대는 유교문화라는 사회 특성과 함께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과 야당이라 할 수 있는 남인과의 권력다툼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참으로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의 국력 낭비이다.

조선의 예송논쟁이 발생한지 무려 361년이 흐른 2020년 7월. 21세기 현대판 예송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지난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의 전직 여성비서가 성추행 혐의로 박 시장을 경찰에 고소한 후 발생했다.

그의 장례기간과 추모 방식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까지 여론이 두 갈래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 장(葬)’으로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 간 치러지는 것에 대해 “해외 체류 중인 친가족(아들) 귀국에 시일이 소요돼 입관시기를 감안해 장례일정을 늘릴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탈하고 검소했던 고인의 평소 삶과 뜻에 따라 유족도 사흘 간 장례를 검토했으나 시신이 밤늦게 발견돼 하루가 이미 지나갔다”며 “자식으로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자 하는 심정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서울시는 정부의전편람에 따르면 기관장(葬)의 대상에는 현직 장·차관이 포함되는데, 서울시장이 장관급 공무원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박 시장의 장례와 조문을 놓고 야야는 서로의 입장을 피력하면서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야당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시장에 조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여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나”라며 “시비를 따질 때가 있고, 측은지심으로 슬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고 했다.

미래통합당 측은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고인에 대한 고소가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났지만, 유력 정치인의 사망과 관련된 의혹은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정치권과 여러 사회단체를 넘어 국민들 사이에도 박 시장의 장례를 두고 논란이 가열됐다.

온라인 분향소에 100만 여명이 헌화 했으며, 이틀 간 2만 여명이 조문을 해 고인을 애도했다.

반면 기관장으로 5일 간 치러지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56만 여명이 참여했다.

박 시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됐다며 “성추행 의혹을 받는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 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는가. 3일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 민선 출범 이후 최초로 세 번 연속 서울시장을 지냈다. 또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그런 인물이었고, 여기에 성추행이라는 혐의와 맞물려 현대사에 이만한 예송 논쟁은 없었다.

그렇다고 인권과 시민운동에 힘쓴 그의 삶 전부가 훼손될 수는 없다.

고인의 업적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또 장례기간과 추모 방식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일로 정치권이 정쟁의 도구로 삼거나,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에 함몰돼 분열과 갈등이 장기화돼서는 안될 것이다.

360여 년 전 조선의 고관대작들이 예송논쟁으로 아귀다툼을 벌일 때 백성들의 삶은 그만큼 피폐했다.

코로나19와 경기침체 극복 등 정치권과 국민들이 헤쳐나가야 할 일이 태산이다.

박 시장에 대한 무차별 논쟁보다 최소한 그의 죽음에 대한 성찰과 품격, 상식이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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