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향한 아홉 살의 다이빙
  • 경북도민일보
음악을 향한 아홉 살의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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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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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서태지와 아이들 을 들으며



-환상 속의 그대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세이렌의 노래가 들려오는 바다 위에서 다시 위기를 맞는다. 죽음의 항해라 불러도 좋을 스펙터클 속에서 이 영웅은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는 꾀를 낸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으면, 무엇이라 해도 홀리지 않으리. 오디세우스는 노래의 의미와 이유를 듣고자 했고 알고자 했지만, 결코 세이렌의 유혹에 말려들 생각은 없었다. 결국,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어 음악을 듣길 원했다. 그와 달리 죽음의 목소리에 가까이 닿고자 바다로 뛰어든 자는 부테스였다. 나로선 신화 속 두 인물 중 마음이 가는 이는 부테스다. 오디세우스가 밀랍 귀마개로 지력을 발휘하는 행위와는 반대로 부테스는 대책 없이 바다로 뛰어든다. 그가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순간에 느꼈던 감정은 어땠을까. 바다를 향해 뻗은 몸의 역동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아홉 살의 내겐 서태지와 아이들이 곧 세이렌의 노래였다. 교실의 정체를 밝히고, 발해를 꿈꾸며,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 무엇보다 기성음악과는 차별화된 새로움에 경도되는 일. 그야말로 우리 시대를 선포하는 일. 이는 분명 선상에서 어딘가에 의지한 채 듣는 음악과는 다르다. 지극히 물 안에, 바다에, 죽음이 도사리는 심연에서 듣기에 적합하고 적절한 세계, 1990년대의 나는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내 모든 것


‘난 알아요’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자를 비뚤게 쓰고 걸음을 달리 걷고 바지를 늘여 입고 개성을 드러냈는가. 이후 젓가락질 못 한다고 밥을 못 먹느냐는 노래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하는 노래가 나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은 대중문화가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이자 분출하고자 하는 열망이자 과거와의 절연이었다(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속된 말로 대한민국은 음악으로 뒤집혔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아이를 낳고, 또 다른 아이를 낳으며 각 분야로 뻗어 나갔다.

아홉 살 난 아이가 듣기에도 분명 그 세계는 뛰어들고 싶은 바다였다. 서태지가 어떤 악기로 곡을 쓰는지, AC/DC의 어떤 곡을 리메이크했는지, 이주노와 양현석이 희대의 춤꾼인지 아닌지, 서태지가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인지 아닌지, 기존의 템포와는 무엇이 다른지, 신해철과 사촌이 맞는지 확인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홉 살이 무엇을 알겠는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틀렸다. 음악에 관한 가장 원초적이고, 직관적이며, 세련된 귀를 가진 나이는 아홉 살이다. 두 자리 숫자의 나이가 되면 취향은 점차 편협해지고, 곡을 잘라 듣고, 소리의 세계를 탐험하길 두려워하게 될 텐데, 아홉 살이면 아직 순수하고 고귀한 귀를 가진 영혼의 결정체라 해도 좋지 않을까. 그 시기에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만났다. 그 순간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그를 향해 헤엄치고 싶었다. 그를 향해 내 모든 것을 내걸고 싶었다.



- 이 밤이 깊어가지만

그렇게 나는 삼십여 년을 더 살아오고 있다(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다시 이들의 첫 앨범을 듣는다.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나. 오늘만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것이다. 세이렌의 음악 앞에 선 신화 속 영웅들, 그건 비단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음악은 만나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영영 서태지와 아이들의 바닷속일까. 잘 모르겠다. 내가 그의 세계에서 비로소 빠져나오는 날이 온다 해도 아홉 살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풍덩. 이처럼 짜릿한 소리가 또 있던가. 물결이 펴져 나가자 저 멀리서 누군가 응답하는 것만 같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 질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 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오성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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