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와 왕좌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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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와 왕좌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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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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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사이 주요 시도의 지자체장이 줄줄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

그저, 해당 시장·도지사가 도덕적으로 해이했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표적인 지자체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유사한 문제로 넘어져 가는 것을 과연 개인적이고 우연한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지자체장의 사고도 퇴락시킬 수 있는 일종의 구조적 문제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에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의심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지방정치는 일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모든 정치적 이슈들이 청와대와 국회, 중앙정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중앙의 이슈가 마치 소용돌이처럼 전 국민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정신적 에너지 대부분이 이미 소모되어 버린다.

그리고 나면 시민들로서는 정작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치에 대하여는 신경 쓸 여력도 없거니와 더 이상의 분노와 스트레스는 피하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끄지 않을 수 없다.

지역민이 지역 정치에 대한 감시를 포기한 상황, 이게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시장·도지사를 주민들이 선거로 뽑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이다. 앞선 1991년에는 지방의회제도 시작됐다.

한 세대라고도 부르는 30년에 달하는 역사가 흘렀고, 이제는 성숙할 만큼 성숙해야 마땅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알게 모르게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크게 보아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단기적인 ‘흥행’에만 매달리게 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4년에 한번 다가오는 선거는 지역의 모든 사업을 요동치게 한다.

세상에 제일 중요할 것 같던 정책들이 하루아침에 뒤집히는가 하면, 거들떠도 보지 않던 정책이 다시 진리가 되기도 한다. 오로지 4년만의 선거를 위해 지역 전체가 춤을 추는 구조이다. 이러다 보면 30년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정책은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임기 내에 그럴듯한 결과를 내는 사업의 비중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미래를 바라보며 씨앗을 뿌리는 정책들이 숨 쉴 곳은 없다.

두 번째는 앞서 말한 대로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를 상실하면서 오늘날 지방자치제가 일종의 ‘왕좌의 게임’과 같이 되어가는 경향이다.

‘중앙도 아닌 지방정치에 무슨 대단한 권한이 있다고 왕좌를 운운하는가?’ 할지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지방 도시의 현실을 잘 모르는 이야기이다.

도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지자체장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도시개발과 관련된 광범위한 권한들이 지자체장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원래 지방정치는 법률이나 외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 시작도 끝도 도시개발이다. 지방 도시민을 웃고 울게 만드는 모든 변화가 도시개발과 관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역의 밑그림인 도시기본계획에서부터 각종 관리계획, 재정비계획, 재생사업에 이르는 대부분의 권한이 이미 지자체장에게 위임돼 있다.

결국 지역의 개발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지자체장의 권위는 막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왕좌의 게임이 시작된다. 분권을 위한 지방자치제도가 의도와는 달리 굳건한 성벽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감시와 견제를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지방의회가 그 중심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 위상은 어떠한가.

하루가 멀다고 뉴스를 장식하는 의원들의 품행도 문제이지만, ‘형님, 동생’들로 복잡하게 연결된 지역의 연줄 속에 그들의 견제가 제대로 작동이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자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의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곤 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날카로운 견제를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일지도 모른다.

의회가 미덥지 못할 때 지역의 각종 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간 전문가들이 지역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가부 의견도 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원회의 임명과 구성 권한 자체가 지자체장에게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결국 중요 정책의 수립과정에서는 들러리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지방자치, 분권은 피할 수 없는 흐름처럼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맞는 내용물, 즉 지역민들의 참여와 감시, 견제가 없다면 지방자치제도가 한낱 왕좌를 만드는 게임으로 변질돼갈 수 있다는 것을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전국구급 지자체장의 연이은 퇴장은 그동안 지방자치제가 견제의 사각지대 속에서 안주하며 왜곡되어 온 결과가 아닐지 의심해봐야 할 때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지금 지방자치제의 상황에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지방분권의 가속페달을 밟기 전, 그것이 과연 옳은 모습과 방향으로 유지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닐까.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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