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토토와 알프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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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토토와 알프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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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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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문기행

#1 지안칼도(Giancaldo) 간이역.

여행용 가죽 가방 두 개가 플랫폼에 놓여있다. 젊은 남자가 두 여성과 포옹을 한다. 기차가 도착하고 있음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린다. 젊은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다가간다. 짙은 선그라스를 낀,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는 노인은 젊은 남자에게 귓속말한다.

“절대 돌아오지 마. 우리 생각도 하지 마. 돌아보지도 말고 편지도 쓰지 마. 향수병 따위는 너에게 없는 거야. 혹시 돌아오면 절대 나를 찾지도 마.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

영화 애호가라면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끝부분이다. 영사실의 꼬마 토토에서 사랑의 열병으로 괴로워하던 10대를 거쳐 군 복무를 마친 청년 살바토레가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다.

지안칼도 간이역의 앞 장면은 해변가. 노인이 살바토레에게 말한다.

“여기를 떠나라. 이 땅엔 희망이 없어. 여기서 계속 살면 여기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해.…로마로 가라. 넌 젊어. 세상을 거머쥘 수도 있어. 난 늙었다. 여기서 너랑 수다 떠는 거 싫어. 멀리서 네 명성만 듣고 싶다.”

저명한 영화감독이 된 살바토레가 30년 만에 그 고향을 찾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1927~2020)의 부음을 접한 이후 나는 ‘시네마 천국’을 다시 보겠다고 별렀다. 다음 장면에 무엇이 나오는지 다 알면서도 결국 영화를 또 봤다. 그런데도 나는 눈시울을 붉혔고,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보았다.

‘시네마 천국’에는 여러 가지 감상 포인트가 있다. 어떤 이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안타까워하고, 어떤 이는 영사기사와 꼬마의 우정을 되새기고, 어떤 이는 시칠리아섬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시네마 천국’하면 자동으로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아무리 영화 속 이야기라지만 알프레도가 없었으면 토토는 영화감독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토토의 잠재된 능력을 알아본 사람은 엄마도, 누나도, 신부도, 극장 사장도 아니었다. 쇠락해가는 시골 극장의 늙은 영사기사였다. 알프레도는 잠재력이 있는 젊은이가 그 재능을 발휘하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그 루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프레도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매정하게 인연을 끊는다. 시칠리아의 알프레도는 로마의 토토 이야기를 들으며 잘려 나간 키스 장면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다 눈을 감는다.

#2 영국의 한 탄광촌

열한살 소년 빌리 엘리어트는 아버지 몰래 발레 교습소에 나간다. 탄광 노동자인 아버지는 아들이 권투를 배우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엘리어트는 우연히 엿본 발레에 빠져들고, 여자아이들 속에서 발레를 배우며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광부인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볼 안목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탄광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런 소년의 잠재된 재능을 발견하는 사람이 발레교습소 윌킨슨 선생이다. 윌킨슨은 엘리어트에게 말한다.

“네 안에 있는 태초의 본성을 이끌어내 봐. 나머지는…” “여긴 잊어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명장면이다.

모딜리아니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누드화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작품이다. 몇 년 전 그의 누드 작품 ‘나부’가 뉴욕에서 1682억원에 거래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진짜 걸작 누드화는 일본 오사카시립근대미술관에 소장중인 ‘머리를 푼 채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다. 만일 이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면 단숨에 최고가 기록을 경신할 것이 확실하다.

36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간 비운의 화가 모딜리아니. 이 천재 화가의 ‘포텐’이 터진 것은 인생 후반부 3~4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은 방황과 방탕의 연속이었다. 진흙에 뒤덮인 그의 재능을 터지게 만든 인물을 시간 역순으로 보자.

화가 지망생이자 아내인 잔 에비테른, 영국 시인이면서 애인이었던 베아트리스, 조각가 브랑쿠시, 화가 피카소, 그리고 고향의 미술선생이자 화가인 미켈리.

나는 리브르노의 화가 미켈리를 주목한다. 모딜리아니에게서 최초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줄 요량이었던 유대계 상인 아버지는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리브르노는 이탈리아 서해안의 항구도시. 로마,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도시에서 보면 변방이었다. 미켈리는 어린 제자의 그림이 남다른 데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미켈리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저 꼬마의 남다른 점을 지도해줄 능력이 없다. 리브르노보다 더 큰 대처(大處)로 가게 해야 한다.’

리브르노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피렌체였다.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인 피렌체! 그곳으로 가면 모딜리아니가 화가로 잘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모딜리아니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광휘(光輝)에 갇힌 도시였다. 모딜리아니는 훌륭한 선생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베네치아를 선택한다. 베네치아에 가면…. 그러나 베네치아도 피렌체와 사정이 비슷했다. 그는 산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도무지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1906년, 스물두 살의 모딜리아니는 파리로 길을 잡는다. 파리로 가자! 파리의 하늘 아래로 가면 뭔가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피카소와 브랑쿠시와 교유하고, 베아트리스와 에비테른을 사랑하며 마침내, 극적으로 천재적 재능이 터진다.

구로사와를 건져낸 다치카와 선생

‘라쇼몽’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와 같은 명작을 연출한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1910~1998). 1951년에 베네치아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쥔 영화감독. “구로사와는 지난 40년간 일본 영화뿐만이 아니라 서구영화계를 지배해 왔다.” 프랑스의 지성 기 소르망의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뛰어났던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천재들의 삶을 연구하다 보면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구로사와가 대표적이다.

구로사와는 신장 187cm의 거구였다. 영화계의 거인이라는 평가에 어울리는 풍모였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소학교 때 지능발달이 더되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행동은 어벙했고 걸핏하면 울었다. 학교에서 왕따였고, 구제불능아이였다. 교사는 아예 그의 책상을 교실 귀퉁이에 따로 놓았다.

소학교 시절 담임교사 다치가와 세이지(立川精治)가 수렁에 빠져 있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느 날 미술시간. 소년은 크레용으로 색칠한 것을 침을 묻힌 손가락으로 문질러 ‘이상한’ 그림을 그려냈다. 아이들은 무슨 그림이 그러냐고 놀려댔지만 다치가와 선생은 그 그림에서 구로사와의 창의성을 읽었다. 구로사와를 칭찬했다. 그가 소학교에서 처음 들은 칭찬이었다. 그 뒤로 구로사와는 미술시간이 기다려졌고, 모든 면에서 변하기 시작한다.

다치가와 선생이 없었으면 구로사와는 어찌되었을 것인가.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아이의 재능이 아주 살짝 비치는 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다치가와 선생! 거의 기적에 가깝다. 구로사와는 평생 다치가와 선생을 잊지 않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알프레도, 윌킨슨, 미켈리, 다치가와는 각각 살바토레, 엘리어트, 모딜리아니, 구로사와에게 방향을 잘 잡아준 1급 조타수였다.

재능을 타고났지만 부모나 선생의 잘못으로 방향을 잘못 잡아 끝없이 방황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잘 사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타고난 기질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인생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리가 인생살이에서 갖는 의문에 대한 거의 모든 대답을 내놓았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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