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미쳤다지만 정말 나는 좋다
  • 모용복선임기자
남들은 미쳤다지만 정말 나는 좋다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0.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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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도
산에 오르고 며칠씩 보내는 兄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마다하고
매일 멀리 시골교회를 찾는 知人
남들은 미쳤다고 말할 지 모르나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가능
편집기자 생활에 이골 난 筆者는
두어시간 꼼짝 않고 집필 삼매경
무엇에 미치면 즐겁고 행복하다

 

모용복 선임기자
모용복 선임기자
나이가 두 살 많은 친한 형이 있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 산에서 며칠을 자는 것은 다반사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을 오른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가 며칠 전 전화를 했다. 최근 휴가차 포항 집에 내려왔노라고. 이틀 후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대화 내용은 대부분 산이였다. 벌써 여러 번 듣는 이야기인데도 질리지 않는다. 그 만큼 그가 겪은 경험들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특별하고도 오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또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8월로 접어들었는데도 장마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형에게 전화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산이란다. 아무리 산을 좋아하기로서니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산을 오르다니,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가 왜 주야장천(晝夜長川) 산에 오르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미리 등산 계획을 짜고 배불뚝이 배낭이 되도록 숙식 준비물을 쟁여넣고 등산복을 잘 차려입고 길을 떠나는 예의 등산가가 아니다. 목적지는 차가 알아서 가면 되고 숙식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먹거리와 비닐, 또 마음이 내키면 언제라도 집을 나선다. 그리고 비닐을 텐트 삼아 숙식을 해가며 며칠 동안 산에서 지낸다. 때때로 하수오, 도라지 등 약초를 캐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산에 미친 것이 아니고서야 그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지인(知人) 중에 교인(敎人)이 한 명 있다. 정확히 말해서 크리스천(Christian·기독교인)이다. 독실한 신자여서 오랫동안 집과 지근거리에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니다 최근 기도처를 옮겼다. 자동차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포항 외곽 면 소재지에 있는 시골의 작은 교회다. 교통이 막히는 도회지에서야 1시간이 그리 먼 거리가 아닐지 몰라도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시골길은 상당한 거리다. 그는 이 먼 길을 매일 밤 자동차를 운전해 기도하러 간다. 낮 예배가 있는 주말을 빼고는.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집 근처에 있는 크고 근사한 교회에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 그런데도 이토록 사서 고생하는 이유가 뭘까? 일을 끝낸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밤 그 먼 거리를 다녀오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세속에 물들어 물질만 추구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소위 요즘 큰 교회들은 타락했다고.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열정이 없는 무신경한 목사(牧師)는 신도들이 가진 마음의 병을 들여다보지 못하며 또 치유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진짜 목회자’와 예배당을 찾아 폭우가 쏟아지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그 먼 길을 나서는 것이다. 남들은 미쳤다지만 정말 좋아서 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20년 넘게 나는 신문쟁이다. 서른이 지나 잠깐 동안 서울살이를 하다 영구히 ‘귀거래사’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지만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요즘 유행하는 살아보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는 것처럼 인생을 시험 삼아 살아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박봉(薄俸)의 지방신문에서 그동안 두 어 번 이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으니 다행한 일이다.

오랫동안 편집기자로 일하다 보니 낮밤이 바뀌었다. 남들은 등을 깔고 잠자리에 들 시간 나는 퇴근했다. 밤에 빛나는 것은 예배당 십자가와 술집 간판뿐이다. 술잔을 비우며 나이를 먹고 시름을 채우며 청춘을 비어갔다. 술안주로 씹어대던 사람들은 속설처럼 지금도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어느 바(Bar) 마담의 현란한 말솜씨에 후배에게서 선물 받은 시계가 며칠도 안 돼 내 손목에서 빠져나간 일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편집 일이 좋았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보문고 등 대구지역 대형서점을 이 잡듯이 뒤져 구석에 꽂혀 있는 직원도 모르는 관련 서적을 발견했을 땐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겨레말사전에서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를 끄집어내 수첩에 옮기고 타지(他紙)에 등장하는 생소한 낱말을 베끼는 일은 당연했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눈에 띄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까 고민했다. 그리고 실제로 신문제목에 내가 만든 신조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음날 내가 단 제목이 활자화 된 신문을 펼쳐 들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 지방부 데스크를 맡고 있으면서 기사를 쓰고 칼럼을 쓰고 사설을 쓴다. 주변에선 “혼자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며 우려 섞인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편집 일을 하는 동안 흘린 땀방울과 고민의 시간에 비하면 현재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세상풍경’을 두 시간째 쓰고 있지만 내가 이동한 것은 앉은뱅이 의자에서 방석으로 엉덩이를 옮긴 것이 전부다. 편집기자를 하면서 시간 죽이기에 이골이 난 덕분이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 미치면 하는 일이 즐겁다. 즐겁지 않고서야 장대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고, 1시간을 걸려 매일 밤 시골 교회에 기도하러 집을 나서고, 두 세 시간 동안 엉덩이 한 번 안 떼고 자판을 두드리기는 쉽지 않다. 남들은 미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이 일이 좋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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