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포반점은 ‘떠오르는 포항’ 점심때면 손님들로 북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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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포반점은 ‘떠오르는 포항’ 점심때면 손님들로 북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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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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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형님과 차린 ‘정든반점’ 둘다 총각때라 신나게 일
포항경찰서 인근에 차린 ‘해포반점’, 점심시간마다 찾아와
아내와 선 본 후 한달 반만에 결혼… 아들 모두 ‘해군’으로
아들 가끔씩 전화와 “아빠 잘있제”
배달 나서는 박병도씨
아내, 두 아들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박병도씨
철가방을 들어보이는박병도씨.
이한웅 작가와 함께.
철가방이 黃金가방으로<중>

△남진·나훈아 리싸이틀 때 포항시내가 술렁거려

중흥관 시절 중앙상가에는 음악다방이 참 많았다. 한성음악다방에도 DJ가 있었고 시민극장 앞 맥심다방에도 DJ가 있었다. 또 대홍백화점앞 남빈사거리 근처에는 산유화라고 경영식과 커피 팔고 음악도 틀어주는 레스토랑이 인기였다. 또 중흥관이 시내 시민극장에서 가까운데 밤에 극장에서 나훈아나 남진 리사이틀이라도 열릴 때면 쩌렁쩌렁 노랫소리가 담을 타고 중국집까지 전해졌고 또 육거리 한강쌀롱 3층에 MBC라디오 중계소가 있었는데 배달가는 길에 음악신청 엽서를 전해주고 오면 금방 라디오에 틀어주기도 하고 참 재미있었다.

1977년 중흥관을 나오기 전에 미리 불러준 동광병원 앞 남빈사거리 ‘동해춘’에서 곧장 일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주인이 화교인데 친절하고 싹싹하게 아버지처럼 잘 대해주었다.

동해춘은 중흥관보다는 작았지만 직원 4명으로 내가 처음 주방장을 맡아 3년 이상 일한 곳이다. 여기서 사장님이 음식백화점을 개업한다고 같이 가자 했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정든반점’이라는 곳에 잠깐 일하다가 포항에 있던 형님과 동업으로 해도동 동해시장 앞에 영업중이던 ‘해도반점’을 인수해 아예 차렸다. 형과 나는 둘다 총각일 때라 나는 주방을 맡고 형은 배달을 다니며 한참 신나게 일했다.

그러다가 한 1년 정도 있다가 1980년4월께 해병대 방위근무를 시작해 동해면 입암리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했다. 호적이 늦게 돼 나이 많다고 대접을 받아 크게 어려움을 없었지만 출퇴근하며 반점일도 하느라 늘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 참 손님이 뜸 할땐 홀 구석에서나, 통근버스 안에서는 꾸벅 꾸벅 많이도 졸았다.

그 후 마침 동업하던 형님도 청도로 방위복무를 가고 나도 방위 근무를 마치고는 자연스럽게 독립해서 덕수동 지금 세무서자리 옆에서 옛날 중흥관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가 경영하던 ‘해포반점’을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원으로 인수해 홀로서기를 했다.



△1982년 3월, 한 달 반만에 번개 결혼

당시 육거리 행정중심가 근처에는 보건소, 경찰서와 군청 시청 뿐 아니라 등기소와 서경도서관 문화원 등 모든 관공서가 집중된 데다 인근에 승리식당과 대전갈비, 덕수물회 등 몇몇 경양식당과 갈비집 빼고는 중국식당이 대세였다. 중국집에서 요리 하나에 우동과 짜장면시켜 놓고 예식하고 그랬다.

특히 1984년인가 그때는 포항경찰서(지금의 북부경찰서) 민원실 건물 신축때라 경찰서 관련 건설인부뿐 아니라 교통사고 민원인들도 많이 식당을 찾아 점심시간대는 북새통을 이뤘다. 경찰서 직원들은 우리 ‘해포반점’을 ‘떠오르는 포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참 이렇게 장사도 잘되고 바쁜 시절에 천생 배필을 만났다. 그러니까 세무서 근처 식당 바로 앞 ‘궁전다방’에서 지금의 아내 윤혜영(61)과 처음 만났는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선보고 한 달 반만에 결혼했다. 마침 결혼적령기도 됐지만 반점 옆 세종문화사라고 인쇄소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중신으로 다리를 놨고 후일 동서가 된 집사람 형부가 일월동 청림에서 부추를 키우고 있었는데 몇 번 식당에 몰래와서 나를 봤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장모님에게 사람 성실하다고 미리 이야기를 많이 해놨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맞선본 지 한 달 반만인 1982년 3월에 결혼했는데, 그건 아마 주방일 하다가 선보러 달려 나가서 운동화와 바지에도 온통 하얀 밀가루 투성이였는데 그게 처녀의 눈에는 성실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집사람은 그때 부산서 시외버스 타고 포항으로 와서 선을 보고 갔는데 포항서 몇 번 만나고 바로 결혼했다. 그리고 37년 동안 껌딱지처럼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그때 우리 집에 남자형제가 많아 그걸 신경 많이 썼는데 첫 눈에 후덕하고 인상이 좋아 딱 찍어놓고 애절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니 포항으로 올라왔다. 그래서 혼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동생과 합동결혼식 올리고, 첫 아들은 허니문 베이비

오거리 유성예식장에서 마침 그때 이미 동거 중이던 바로 밑의 동생과 합동결혼식을 올리고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해 12월에 첫 아들을 낳았으니 첫째는 ‘허니문베이비’ 였다. 그때 곗돈타서 가게 가까운 포항초등학교 앞에 신혼 단칸방을 얻었다. 모든게 빨리 진행된 게 고마웠고 내가 26살, 집사람이 23살 때 결혼해 그해 큰 아들을 낳고 3년 터울로 덕수동 해포반점에서 일할 때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때 신혼초 포항세무서 근처 해포반점에서 낳은 두 아들은 나란히 훌륭하게 자라 자랑스러운 해군이 됐다. 해포반점 할 때 반점이름에 바다를 가리키는 바다 해(海)가 들어가서 그런지 두 놈다 해군으로 갔다. 큰 아들 순진이는 공군사관학교를 가고싶어 했는데 포항고 나오고 대학 거쳐 결국 해군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해 해군장교가 돼 헬기 조종사가 됐다. 지금은 소령이고 딸 하나 아들하나다.

랑스헬기를 조종하며 소말리아에 파병다녀오기도 했고 미국에 비행훈련도 다녀왔다. 지금은 진해에서 근무 중인데 가끔씩 회식때 술 한잔 하면 전화해 “아빠 잘 있제?”하면 금새 눈물이 글썽거린다.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둘째 순면이는 동해에서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중이다. 기계분야를 전공했는데 대학다니다 형의 조언으로 해군에 입대했는데 해군 하사관으로 군복을 계속입고 있다. 두놈 다 해군에 있어 오래전 마누라하고 아들 임관식에 가서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계속>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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